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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017
한자 高靈郡
영어공식명칭 Goryeong-Gu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집필자 정동락

[정의]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개설]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대가야읍에서 합쳐져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고령군은 서쪽의 높은 산과 동쪽의 낙동강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외적이 침입하기 어렵고, 한편으로 낙동강의 뱃길을 이용해 밖으로 쉽게 교통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다. 삼국시대 대가야의 도읍이 있었던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고장으로 동경 128°10´~128°29´, 북위 35°37´~35°51´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 약 23㎞, 면적 382.25㎢의 군으로 1읍 7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구는 3만 2191명[2019년 기준]이다. 군청 소재지는 대가야읍 지산리[왕릉로]이다.

[자연환경]

고령군의 동쪽 경계를 흐르는 낙동강으로부터 대가야읍까지는 북동~남서로 경상계(慶尙系) 낙동통(洛東統)이 띠 모양으로 발달하여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이 부정합으로 덮여있으며, 소백산맥의 일맥인 가야산이 군의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나와 문수봉(文壽峯)[484m]·미숭산(美崇山)[733m] 등의 산지를 이루고, 그 곁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내려 대가야읍주산(主山)[310m]을 이룬다.

그리고 가야산의 일맥이 만대산(萬代山)[688m]·노태산(魯泰山)[480m]·소학산(巢鶴山)[622m] 등의 산지를 이루며 경상남도와의 경계가 된다. 따라서 고령군은 서남쪽이 험한 산줄기로 이어져 있고, 동쪽은 달성군과의 경계로 낙동강의 본류가 흐르고 있는 천연의 요새이다.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여러 갈래로 흘러내린 하천이 고령에서 합류하여 우곡면 하부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이중 대가천가야산 북서쪽에 발원하여 성주 수륜면을 거쳐 운수면을 관통하고, 소가천가야산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덕곡면을 거쳐 대가야읍에서 대가천과 만나 금천이 된다.

또 용담천[현재의 안림천]은 가야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해인사 홍류동 계곡을 거쳐 합천군 가야면과 야로면을 지나 대가야읍 남부와 개진면 북부에서 금천과 합류하여 회천이 되어 흐른 다음, 우곡면 남부에 이르러 낙동강 중류로 흘러들어간다. 이 지역은 평지보다 구릉이 많으나, 낙동강의 서안과 그 지류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내륙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크고, 특히 여름에는 영천시·대구광역시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연평균 기온 14.6℃이고, 1월 평균 기온 1.5℃, 7월 평균 기온 28.4℃ 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747.7mm이다.[2008년 기준]

[역사]

고령군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청동기시대이며, 산재한 여러 가지 바위 구멍 유적이 이를 확인해준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으나, 다산면 낙동강 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확인되어,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삼한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지역에도 소국이 형성되었는데, 대가야의 전신인 반로국(半路國)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대가야는 금관가야가 쇠퇴한 뒤 후기 가야의 맹주로 그 세력을 떨쳤으며, 5세기 중엽에는 중국의 남조에 사신을 파견하여,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이라는 작호를 받아왔고, 522년(법흥왕 9)에는 이뇌왕(異腦王)이 신라의 이찬(伊湌) 비조부(比助夫)의 누이와 혼인하는 등 동맹 관계를 체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신라의 압박이 심해지자 백제와 가까워져, 554년(진흥왕 15) 백제 성왕의 신라 공격에 군대를 보내 지원하기도 했지만, 562년 이사부사다함이 이끈 신라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따르면, 대가야는 시조 이진아시(伊珍阿豉)에서 도설지왕(道設智王)에 이르기까지 16대에 걸쳐 존속하였다고 하며, 대표적 유적으로는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있다. 신라의 영토로 편입된 고령은 대가야군으로 편제되었으며, 9주제 아래에서는 청주(菁州)에 속하여 적화현(赤火縣)[현 합천군 야로면]과 가시혜현(加尸兮縣)[현 합천군 가야면]을 거느렸고, 757년(경덕왕 16) 고령군으로 개명되었다.

후삼국시대의 고령은 후백제와 접경 지역으로 고려 태조는 이 지역을 요충으로 인식하였으며, 이로 인해 속언(俗諺)에는 고령이 고양대도호부(高陽大都護府) 또는 영주목관(靈州牧官)으로 불리었다고 전하고 있다. 940년(태조 23) 태조에 의해 전국 군현에 대한 새로운 통치 조직이 구축되면서 고령군은 경산부(京山府)[현 성주]에 소속되었고, 야로현과 신복현이 떨어져나가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가, 1175년(명종 5) 감무가 파견되면서 행정 단위로서의 지위가 높아졌다.

고령은 낙동강의 수운을 통해 바다와 연결되고 있어서 고려 말에는 왜구들의 약탈 대상이 되었고, 침입했던 왜구들이 박위(朴葳)에 의해 격멸된 적도 있었다. 한편, 1376년(우왕 2)에는 고령 지역에 큰 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자가 속출했다는 사실이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 있다.

조선 건국 이후 8도 체제가 확립되고 집권화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1413년(태종 13) 고령에도 감무 대신 현감이 파견되었으며, 재지사족(在地士族)들의 중앙 정계 진출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이곳 출신의 박(朴)씨·신(申)씨·유(兪)씨도 중앙으로 진출하여 명문으로 성장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김면(金沔)이, 정유재란 때는 박정완(朴挺琬)이 의병을 일으키는 등 고령은 의병 활동의 주요 근거지가 되었다. 고령은 가야·신라 이래 토기와 옹기의 생산지로 유명했으며, 고려·조선시대에는 양질의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널리 알려졌고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1895년(고종 32) 전국적인 지방 제도 개편과 더불어 고령은 군으로 승격, 대구부에 속하게 되었고 이듬해의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고령군이 되었다. 또 1905년 행정 구역을 조정하면서 인곡·덕곡·노다·다산 등 4개 면이 성주군으로부터 편입되어 관할 구역이 넓어졌다.

주권이 외세로부터 위협받던 구한말에 전국적으로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자, 고령군에서도 유지들의 출연(出捐)에 의해 1906년 영신학교(靈信學校)가 설립되어 민족 자존 의식을 고취하였으며, 이 전통은 민족항일기 동안 민족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다.

즉 1919년 3·1운동에서는 덕곡면·우곡면 등지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으며, 직후에 영남 유림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던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에도 고령의 유림들이 다수 가담하였다. 또, 1920년대부터 청년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고령청년회를 비롯한 7개 단체가 성립되었으며, 이 단체들은 야학·강습회 등을 개최하여 민족 실력 양성 운동에 참여하였다.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 좌익의 교묘한 선동으로 인하여 시작된 대구 10·1폭동의 영향이 고령에도 파급되어 폭도들에 의해 경찰서가 습격당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1950년 북괴의 남침으로 낙동강 방어 전선이 구축되자, 고령은 적에 의해 점령되어 또 한번 큰 피해를 입었다. 1975년에는 고령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2015년에는 대가야읍으로 개칭하였다.

[교통]

낙동강 중류의 좌안에 위치하여 낙동강을 이용한 수상 교통의 요충지로서 교통이 편리한 이점이 있다. 낙동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관물(官物)과 공물(貢物)을 수송하였으며 강화도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해인사로 운반하는 등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물자 수송과 인적 교류가 많았다. 육상교통에 있어서도 조선시대에는 간선도로의 하나인 문경~고령~영산~고성~거제로 이어지는 조선시대의 오대로 상에 위치하여 교통량이 많았다.

최근 도로 교통의 경우 국도가 군의 남북과 동서로 교차하고 있는데, 그 중 군의 중앙을 동서로 통과하는 국도 26호선을 이용하여 동쪽의 대구까지는 36㎞의 근거리이고 서쪽으로는 거창을 거쳐 전라남도의 광주, 전라북도의 전주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1984년에는 고속국도 12호선[광주대구고속도로]이, 2009년에 고속국도 45호선[중부내륙고속도로]이 고령을 통과하게 되어 더욱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게 되었다.

[산업]

2008년 고령군의 경지 면적은 64.16㎢[논 49.31㎢, 밭 14.85㎢], 농업 인구는 1만 2517명, 농가 수는 5127가구로 집계되었다. 지역 특산물로 고령딸기, 우곡그린수박, 성산멜론, 개진감자, 고령옥미, 가야그린포크, 다산향부자 등이 있다.

그리고 대도시 인접 지역으로 경제 활동이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 즉 풍부한 노동력, 산업 정보, 금융 및 무역 여건 등 최적의 투자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편리한 교통망과 함께 낙동강산업벨트의 중심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고령군에는 다산지방산업단지, 개진지방산업단지, 개진농공단지, 쌍림농공단지 등의 산업단지가 있으며 229개 업체에 3,450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2007년 말 현재 수출액은 3098만 4000달러에 달하고 있다.

[교육]

2010년 6월 현재, 유치원 12개, 초등학교 12개, 중학교 6개, 고등학교 2개, 대학교 1개를 합쳐 모두 33개의 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전체 학생 수는 3,500여 명이다. 그리고 22개의 학원과 31개의 과외 교습소가 운영 중이며, 고령군 자체적으로 대가야교육원을 운영하여 지역 교육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관광]

고령은 대가야의 수도로, 선사시대 유적 등 수많은 문화 유산이 전해온다. 대가야시대 최대의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함께 고령의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유적과 유물을 보여주는 대가야박물관, 지산동 44호분을 그대로 재현한 왕릉전시관 등이 있고, 그 외에 우륵박물관, 대가야 역사테마관광지, 산림녹화기념숲,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개실마을 등 찾아볼 곳이 많다.

고령군은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물 3점·사적 5개소·중요민속문화재 1점 등 9점, 지방 지정 문화재로 유형 문화재 6점·기념물 3점·민속자료 1점·무형 문화재 1점 등 11점, 그리고 문화재 자료 8점 등 많은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부터 매년 4월 대가야체험축제를 개최하여 전국적, 세계적으로 고령을 알리고 있다.

[복지·문화시설]

문화 시설로는 경상북도교육청 고령도서관, 고령문화원, 고령체육관, 생활체육공원이 각각 1개소가 있다. 그리고 가야금경연대회, 결혼식 등 여러 가지 행사를 담당하는 고령 대가야국악당이 있다. 복지 시설로는 23개의 의료 기관과 노인·장애인·부랑인을 위한 복지 시설 5개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위한 시설 4개소가 마련되어 고령군민의 복지를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2.15 내용 현행화 그리고 1984년에는 고속국도 12호선[88올림픽고속도로]이, 2009년에 고속국도 45호선[중부내륙고속도로]이 고령을 통과하게 되어 더욱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게 되었다. -> 그리고 1984년에는 고속국도 12호선[광주대구고속도로]이, 2009년에 고속국도 45호선[중부내륙고속도로]이 고령을 통과하게 되어 더욱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게 되었다.
2021.01.25 인구 수 수정 인구수 수정 인구는 3만 2191명[2019년 기준]이다.
이용자 의견
토* 아름다움 고령 다산 벌지!!! 2012.02.10
토* 아름다운 고령 다산 벌지!!! 2012.02.10
토* ^^ 아름다운 고령 다산 벌지!!!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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