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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029
한자 佛敎
영어의미역 Buddhism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집필자 박병선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에서 석가모니를 교조(敎祖)로 하여 그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종교.

[고대]

고령군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와 관련된 직접적인 자료는 없으나 기존의 연대기나 유물, 유적 등을 통하여 추정은 할 수 있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 가락국 제8대 질지왕허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혼인하였던 땅에 왕후사(王后寺)를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를 통해 5세기 중엽 당시 금관가야 지역에 이미 불교가 전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고 따라서 인근 대가야 지역에도 불교가 유입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신라본기」에 사다함이 제일 먼저 공략한 대가야 성문이 전당량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전당량이 향나무라는 의미이므로 당시 대가야가 향을 중시하는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지산동 44호분 주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청동합 안의 향나무 목편과 고아동 벽화고분에서 발견된 연화문도 불교의 전래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가야의 태자 월광이 거덕사(擧德寺)와 월광사(月光寺)를 결연하고 창건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 역시 당시 고령 지역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알리는 또 다른 증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경우 802년에 고령 지역에서 해인사(海印寺)가 창건되었다는 확실한 기록이 전해지며 해인사에는 이 시기의 유물로 삼층석탑, 길상탑, 석등, 법보전 비로자나불 등이 남아 있다. 또한 야로현 북쪽 5리에 있는 월광사에도 통일신라시대 석탑 2기가 있으며 황매산 아래의 청량사에도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석가불 좌상과 삼층석탑, 석등 등이 있다. 그 외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당간지주, 대가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석불상 4기와 석탑 2기 등도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사원으로는 쌍림면 용리에 있는 반룡사(盤竜寺)대가야읍 지산리에 있었던 물산사지(勿山寺址)를 들 수 있다. 반룡사에는 고려 중기에 조성된 석가여래의 사리탑 또는 수마노탑이라고도 하는 다층석탑이 전해지는데, 화강암 기단 위에 1층 탑신이 남아 있고 그 위에 점판암으로 만든 옥개석이 다층으로 되어 있다. 반룡사는 14세기에 화엄 중심 도량으로 발전하였다. 반룡사에서 주법으로 활동한 체원(体元)은 균여 이래의 민중 지향 화엄 사상의 맥락을 이어 민간 신앙과 결합한 관음 신앙, 염불 신앙을 강조하여 몽골 지배하의 고령 지역은 물론, 경주와 현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민심을 추스르기도 하였다.

물산사지는 최근 지산리 도시계획도로 개설을 위한 발굴 조사 결과 고려시대 사원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산사(山寺)’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편과 ‘물산사(勿山寺)’ 명문 기와편이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고려시대에는 당간지주석이 있는 이 일대의 사역이 물산사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산사는 자복사로서 매년 연등회와 경행을 주도하고 다른 사원들과 함께 사원 세시 풍속, 개인적 발원, 기일, 장례 등의 생활 예제까지 담당하였다.

그 외 다산면 상곡리 사지(寺址)에는 미륵불이라 불리는 형체의 훼손이 심한 입상 석불 1기가 있고, 운수면 대평리 사지에는 미륵불로 불리는 석불 1구가 있으며, 개진면 개포리에는 석조관음보살좌상이 있다. 현재 근래에 세워진 암자가 있는 쌍림면 합가리 사지에는 사찰의 초석재, 기단석재, 기와편들이 상당수 산재하고, 일부 탑재로 보이는 것도 있으며 석불 2구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령 지역의 불교는 기존의 사찰인 반룡사 정도가 유지되었을 뿐 과거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태종조 사원 기반의 대대적 박탈과 함께 자복사 및 비보 사원이 거의 없어지는 과정에서 물산사가 망폐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원도 폐허화 되었으나, 반룡사만은 사세를 계속 유지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통 사찰로서 맥을 이어오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교종(敎宗)에 속했던 반룡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불이 나서 법당과 요사가 모두 탔으나 1764년(영조 40) 현감 윤심협(尹心協)이 대웅전과 요사·만세루 등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1930년에 다시 중수하고, 1998년에 심검당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조선사찰령을 발표하여 한국 불교의 교정을 총독과 지방관이 장악하도록 하였다. 즉 주지는 총독이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본사로 지정된 사찰은 각각 본말사법을 제정하여 조선 총독에 신청한 후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고령 지역에서는 반룡사가 해인사의 말사로 존속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대가야읍 연조리관음사[1910년]와 우곡면 봉산리대봉사[1935년] 등이 창건되었다.

[현대]

해방 이후 자유로운 사원 창건이 가능해지면서 고령 지역에도 많은 사원이 건립되었다. 전통 사찰인 반룡사를 제외하면 모두 사세가 미약하지만 고령 지역 불교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이라 인구가 적어 사찰들의 사세가 미약하고 사찰 운영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운영 주체가 자주 바뀌거나 폐사하는 사찰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 사회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불교의 기능이 점차 상실되어 가고 있으며, 사찰 운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참선이나 공부보다는 기복적인 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고령 지역에 현존하는 사찰로는 대가야읍관음사·관음정사·대광사·법연사·보광사·불광선원·시도사·영주암·황룡사·쌍림면구국사·귀원사·도경사·묘성암·반룡사·보상사·수덕사·쌍림사·영통사·황룡사, 성산면의 덕성사·성불사·약사사·영생전·용담사·용운사·청산암, 다산면석불사·성불사·원광사·육대심인당·죽림암, 개진면의 고운사·도원암·월명암·정안사, 우곡면대봉사·도성사·오성암·청룡사, 덕곡면의 고흥사·대덕사·법수선원, 운수면의 능엄사·청룡사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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