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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141
한자 新間里
영어음역 Singan-ri
이칭/별칭 신한동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신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현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2.92㎢
총인구(남, 여) 202명(남자 98명, 여자 104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17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궁동·봉계동·물한동을 병합하고 신궁의 ‘신’자와 물한의 ‘한’자를 따서 신한동이라 하였다. 그 후 운수면 신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신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의봉산(儀鳳山)[535m] 남서 자락에 자리 잡은 산지이다. 서남쪽에는 약간의 평야가 펼쳐져 있다. 의봉산은 비봉산(飛鳳山)·유복산(有福山)·이부산(尼夫山)이라고도 하며 옛날의 봉수 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의봉산 밑에 자연마을인 산간봉산리가 있고, 의봉산 중턱에는 골이 좁고 산세가 험하여 한가롭게 지낸다는 뜻에서 물한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난(亂)이 없다는 뜻에서 무란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산 아래에 있는 들로 이주하고 텅 빈 마을이 되었다.

물한이 남쪽에 꽃박이마산, 북쪽에 등빙이산, 옆에 도점산·등재산·동산·솔봉산 등이 있다. 이들 산지와 더불어 가는평골·돌목골·물한골·점토골·앞망터골 등의 골짜기가 있고, 물한재·이릿재[일명 칠일령]·솟집재 등의 고개가 있다. 서남쪽 평야 지대에는 경기나무밑들·느티나무밑들·다리깨들·배루병들·샛논들·세모개들·시북들·화장들 등의 들이 펼쳐져 있다.

[현황]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2.92㎢로 농지 54만 3000㎡, 임야 1.94㎢, 기타 44만 5000㎡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17세대에 202명(남자 98명, 여자 10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신간1리·신간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산간봉산리·물한이 등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와 상황버섯 재배가 이루어지고, 신간1리에서는 한우도 사육하고 있다. 온전전씨 집성촌으로 20세대가 살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의봉산성(義鳳山城), 의봉산 봉수 터, 전극창 묘(全克昌墓), 신간리 입석, 경모재 등이 있다.

대가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의봉산성의봉산 정상에 있어 산정에서 달성군 일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북서쪽과 남서쪽은 자연 절벽이다. 성내에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봉수대가 있는데, 현재 봉수대 석축은 거의 허물어지고 주마대(走馬臺)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3.21 [수정] 신궁의 ‘신’자와 물한의 ‘한’자를 따서 신한이라 하였다. -> 신궁의 ‘신’자와 물한의 ‘한’자를 따서 신한동이라 하였다가 변하여 신간동이 되었다.
2011.03.21 [수정] 명칭유래 소표제 삭제. 형성 및 변천 내용을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궁동·봉계동·물한동을 병합하고 신한동이라 하였다. 그 후 운수면 신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신간리가 되었다.-> 조선 말기 성주군 흑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궁동·봉계동·물한동을 병합하고 신궁의 '신'자와 물한의 '한'자를 따서 신한동이라 하였다. 그 후 운수면 신간동이 되었고, 1988년 5월 1일 운수면 신간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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