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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171
한자 開浦里
영어음역 Gaep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신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4.45㎢
총인구(남, 여) 195명(남자 104명, 여자 9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15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개포(開浦)는 원래 개산포구(開山浦口)로, 일찍이 낙동강을 이용한 수운(水運)의 요지로서 소금과 곡식을 운반한 선창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판을 강화 전등사에서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로 옮길 때 서해안을 거쳐 김해의 낙동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와 개포나루에 이른 뒤, 육로로 대가야읍 화갑을 거쳐 해인사에 다다랐다. 이후부터 개경포(開經浦)로 불리다가 1914년 개포동으로 고쳤다.

개포리에 있는 자연마을 한절골은 옛날 조씨(曺氏)·문씨(文氏)·최씨(崔氏)가 개척한 마을로, 마을 뒤에 큰 절이 있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달리 한제·한짓이라고도 한다. 시리골[일명 시례]은 문씨가 개척한 마을로, 골짜기의 생김새가 마치 떡시루처럼 생겨 붙인 이름이다. 팔만대장경판을 해인사로 옮길 때 연락소가 있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고령군 구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례동·한제동을 병합하여 개포동이라 하고 개진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개진면 개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기암절벽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남쪽으로 달의말랑, 동쪽으로 당산, 북쪽으로 독구름 등의 산이 있고, 시리골 뒤로 시릿골, 개포 서북쪽으로 문등골·불뭇골, 개포 동북쪽으로 부칫골 등의 골짜기가 있다. 시리골 앞쪽으로 시렛들, 개포 동남쪽으로 시진들, 창마소에 창들이 펼쳐져 있고, 개포 서쪽으로 큰 고개인 열밋재가 있다. 시리골 입구에는 둘레가 세 아름이나 되는 느티나무인 삼정지가 있다.

[현황]

대가야읍에서 동쪽으로 약 6㎞ 지점에 있다. 2010년 3월 기준 면적은 4.45㎢로 농지 46만 9000㎡, 임야 3.53㎢, 기타 45만 6000㎡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15세대에 195명(남자 104명, 여자 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개포1리·개포2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마을로는 한절골·시리골 등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서 봄에는 감자·마늘·양파를 많이 재배하고, 가을에는 벼농사에 주력하고 있다. 공공기관으로 개진면사무소, 파출소, 보건지소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로 지정된 고령 개포동 석조관음보살좌상(高霊開浦洞石造觀音菩薩坐像), 개포리 고인돌, 개포리 고분군 등이 있다. 1745년(영조 20) 창건한 제삼정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낚시터로 변하였다.

개포나루는 옛날에 곡식과 소금을 실어 나르는 배들로 붐비고 곳곳에 창고가 많이 있었으나 지금은 나루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개진면에서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으로 건너가는 데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

개경포기념공원(開經浦記念公園)낙동강을 끼고 있는 개경포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해 개경포나루 인근에 조성한 공원으로 2001년에 문을 열었다. 깔끔하게 손질된 넓은 잔디에 개경포의 유래를 적은 유래비와 표석, 팔각정, 벤치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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