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도진리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366
한자 桃津里戰鬪
영어의미역 Dojin-ri Battl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호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1597년 7월 15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지도보기
관련인물/단체 정기룡

[정의]

1597년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역사적 배경]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에 고령 방면에도 나타났다. 왜군이 고령으로 진출하자 금오산성을 지키고 있던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명을 받아 기병 150명과 보병 800명을 거느리고 고령에 와서 왜적과 전투를 벌였다.

[발단]

둔덕대첩에서 패배한 왜군이 정기룡 장군에게 복수하기 위해 고령을 다시 침략하면서 일어났다.

[경과]

왜군은 남원의 적과 합세하여 거창 방면으로 북상하고, 또 일부는 삼가를 거쳐 합천·고령을 침략하였으며, 함안의 적은 창녕을 지나 현풍으로 빠져 성주로 진격하였다. 적의 돌격대원 1,000명이 거창에서 7월 12일 야음을 틈타 이천을 거쳐 가야산을 넘어 창천을 불사르고 화원현에 다다르고, 현충을 지나친 왜적이 샛길로 용정을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날아들자 7월 13일 새벽에 명나라의 노득룡(盧得龍)이 정기룡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왜적이 화원현을 분탕하고 고령의 서쪽 무계진(茂溪津)에 진을 치고 강물의 깊이를 측량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정기룡 장군은 밤중에 덕산(德山)으로 건너올 것을 알고 산과 숲에 군사를 잠복하게 한 뒤 협격을 가하도록 준비하였다. 그러나 밤에 왜적을 실은 나룻배가 가까이 오자 명나라 군사가 성급하게 발포하여 왜적이 배를 거두어 달아나고 말았다. 정기룡 장군은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샛길로 도진리에 도착하여 군사를 풀어 구곡리에 이르기까지 강 양쪽 기슭에 매복시켰다. 7월 15일 수십 척의 배에 나누어 탄 왜군이 물길을 따라 내려오자 이를 공격하여 수백 명을 사상시켰다.

[결과]

도진리전투에서 패한 왜군은 배를 버리고 산등성이를 타고 덕산 쪽으로 나아가 분탕질을 저지르자 출격하려던 정기룡 장군은 북상중이던 왜군이 도진리전투의 소식을 듣고 고령 안림역으로 회군하고 있다는 첩보들 듣고 출동하여 왜군을 물리쳤고, 그 기세를 몰아 거창·함양·진주로 나아가 전공(戰功)을 세웠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