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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농민항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376
한자 乙未年農民抗爭
영어의미역 Peasant Rebellion in 1895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수세거부운동|반봉건 농민항쟁
발생(시작)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고령군
관련인물/단체 김영준|선비 신모(辛某)

[정의]

1895년 고령 지역에서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역사적 배경]

조선 왕조의 모순이 드러나는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농민층의 봉기가 빈발하였다. 당시 농민 봉기는 지방관의 학정(虐政)과 지방 사족층의 횡포, 외세의 정치 경제적 침략에 따른 위기의식의 고조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다. 특히 삼정(三政)의 문란은 경제적으로 농민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더욱이 1895년(고종 32)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으로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 투쟁이 발발하였고, 개화 정부에서 파견된 지방관은 왜관찰사(倭觀察使)·왜군수(倭郡守)로 지목되어 처단 대상이 되었다.

[목적]

전세(田稅)·삼수미세(三收米稅)·대동미(大同米) 등 각종 세금의 과징(過徵)과 족징(族徵) 등 군정의 강행에 대한 현감의 해명과 개선책을 요구하였다.

[발단]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사는 선비 신모(辛某)는 다수의 농민을 이끌고 현청에 난입하여 현감 김영준의 실정을 성토하였다.

[경과]

고령 현청에 난입한 농민들은 장문의 질의서를 낭독하고 현감의 해명과 개선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현감은 학정에 대해 사과는커녕 오히려 농민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에 격분한 군중들은 현감을 현청에서 끌어내어 집무를 볼 수 없게 하였다.

[결과]

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감 김영준을 탐관오리로 치죄하여 파직하였다.

[의의와 평가]

을미년 농민항쟁은 현감의 학정에 반발한 농민들이 관아를 점거하고 수령을 축출한 사건으로, 지방 수령에 대한 저항이자 친일 관리에 대한 항쟁이었다. 이것은 조선 후기 이래로 성장한 민중 의식을 기반으로 한 반봉건 농민운동이며, 나아가 개화파 정부가 파견한 지방 수령에 대한 반침략 농민 운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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