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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독립청원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403
한자 -獨立請願運動
영어의미역 Paris Long Petition Incident
이칭/별칭 파리장서사건,유림단독립청원운동,제1차 유림단 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고령군
관련인물/단체 곽수빈|이인광|이상의|윤량식|곽걸|이영로

[정의]

1919년 고령 유림계가 참여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한 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곽종석(郭鍾錫)의 문인 윤충하(尹忠夏)는 서울의 만세 시위운동 상황과 파리강화회의 등 국내외 정세를 설명하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작성, 곽종석이 대표로 나서 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곽종석김창숙(金昌淑)과 상의하였는데, 김창숙은 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 유교 대표가 빠졌으므로 국제 활동의 사명은 유림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활동에 착수하였다.

[목적]

김창숙은 191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고 국제 여론을 조성하여 한국의 독립을 인정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국제적 활동이 실패를 하더라도 한민족의 민족 독립에 대한 염원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며, 일제에 발각되는 경우 구속 소동이 일어나게 되어 안일에 빠져있는 유림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경과]

김창숙은 김정호(金丁鎬)와 추진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곽종석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림을 대상으로 서명 작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운동자금의 준비에 착수하는 한편, 파리장서의 문안 작성을 장석영(張錫英)에게 맡겼다. 곽종석을 중심으로 서명 작업과 자금 모금을 하여 상경한 김창숙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충청도 유림도 같은 취지에서 문안을 만들어 임경호(林敬鎬)를 파리로 파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김창숙은 임경호와 논의하여 서명자로 김복한 등을 추가하고 자신이 대표로 파리로 가게 되었다.

독립청원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대표 137명 중 고령 출신의 유림은 곽수빈(郭守斌), 이인광(李寅光), 이상의(李相義), 윤량식(尹亮植), 곽걸(郭杰), 이영로(李泳魯) 등 여섯 명이다. 고령 출신의 서명자들은 한주학파를 계승한 곽종석의 문인들로, 고령을 대표하는 유림이었다.

[결과]

파리독립청원운동은 1919년 4월 12일 성주시장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던 송회근(宋晦根)이 체포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곽종석, 장석영, 송준필 등이 체포 투옥되면서 서명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었다.

[의의와 평가]

1919년 3·1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전국의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청원서를 작성하여 발송하였다는 것은 유림들의 독립 의지를 서계(西界)에 천명하는 일이었다. 파리독립청원운동은 곽종석김창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유림이 주도하였고, 특히 고령 지역을 대표하는 여섯 명의 유림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민족 운동에서 고령 지역의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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