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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관중수기초」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16
한자 伽倻館重修記草
영어의미역 Record of The Restoration of The Gayagwan Guesthous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형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조병선
발급일시 1843년연표보기
발급처 고령현

[정의]

1843년 고령객사 중수 사실을 전하는 두루마기형 고문서.

[개설]

객사는 정청에 전패(殿牌)를 모셔 두고 대궐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는 장소이자 지방 군현에 파견된 사신이나 외국 사신이 오갈 때 머무는 숙박 기관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접대가 중시된 반면, 후기에는 전패를 봉안하고 망궐례를 행하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중요시되었다. 고령객사는 1493년(성종 24) 고령현감 신담(申澹)이 건립했는데, 정청인 9칸 규모의 가야관과 동대청인 15칸 규모의 인빈각, 서대청인 15칸 규모의 전일헌 등 대략 50여 칸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령객사는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제작발급경위]

1842년 여름 고령현감으로 부임한 조병선은 객관에서 망궐례를 올린 후 건물을 살펴보았는데, 정청인 가야관과 인빈각은 기둥이 기울어지고 초석이 무너졌으며, 전일헌은 폐하여 없어지고 잡초만 무성하여 군왕의 덕을 숭앙하고 사신을 접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이에 중수할 뜻을 세워 감영에서 공전(公錢)을 지원받고 재목과 기와를 옮기는 것은 민력(民力)을 빌렸다. 이를 통해 전대청 9칸, 인빈각 15칸, 내삼문 7칸, 외삼문 3칸, 강창고사 21칸 등 55칸을 중수했으며, 폐문루 3칸, 공수 14칸 등 17칸은 수보하였고, 전일헌 15칸, 고직가 3칸, 서원청 13칸 등 31칸은 새로 지었다. 그리고 전대청과 인빈각, 내삼문·외삼문과 폐문루 등은 단청을 새롭게 하고 이에 대한 사실을 두루마기형 문서로 제작하여 남긴 것이 「가야관중수기초(伽倻館重修記草)」이다.

[형태]

크기는 가로 165㎝, 세로 26㎝이다.

[구성/내용]

「가야관중수기초」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고령객사의 중수 동기와 과정을 설명하고, 구체적인 중수 내용과 함께 중수 비용의 출처를 기록하여 두었다. 건물의 명칭은 물론 구체적인 칸수와 중수, 신건(新建), 수보(修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고령객사의 건축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새롭게 갖춘 물품 목록을 기록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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