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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리 꽃질마을 절강시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39
한자 花岩里-浙江施氏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of Jeolgang Si Clan in Hwaam-ri Ggojil Maeul
이칭/별칭 화동,화곡,열매동,실동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 꽃질마을지도보기
집필자 이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성마을
가구수 약 12가구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에 있는 절강시씨 동성마을.

[명칭유래]

마을 산 모양이 연꽃과 같고 봄이면 온 산이 꽃으로 둘러싸여 산에 오를 때면 꽃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 하여 꽃길의 사투리인 꽃질이라 하였다. 달리 꽃동네란 뜻의 화동(花洞), 꽃골이란 뜻의 화곡(花谷), 꽃이 지고 열매를 많이 맺으므로 열매동이라고도 한다.

꽃질마을은 다시 안꽃질과 아래꽃질로 나누어진다. 안꽃질은 꽃질마을에서 가장 안쪽인 위에 자리 잡고 있고, 꽃의 속잎처럼 보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달리 웃꽃질·내화곡·내화동이라고도 한다. 아래꽃질은 꽃질마을에서 가장 아래쪽, 즉 바깥에 자리 잡아 붙인 이름이다. 꽃의 바깥 모양 같은 마을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며, 달리 박꽃질·외하곡·외화동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순천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고, 그 뒤에 절강시씨가 정착하였다. 절강시씨는 명나라 무장 시문용(施文用)을 시조로 한다. 시문용은 명나라에서 병부시랑을 지낸 시윤제의 아들로 중국 저장 성 출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7년 동안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명군의 철수할 때 병을 얻어 귀국하지 못하고 경상북도 성주에 정착하였다.

인접한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아래맞질에 시조 묘가 있고, 이웃한 운수면 대평리절강시씨 유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성주군 수륜면과 고령군 운수면 일대에 세거한 것으로 여겨진다.

꽃질마을이 속한 화암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운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암동·거호동·화동을 병합하여 화암동이라 하고 운수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운수면 화암리(花岩里)가 되었다.

[자연환경]

대가천을 거슬러 올라 대가야읍에서 20리쯤 들어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 화암들이 펼쳐져 있고, 들판 너머로 대가천이 흐른다.

[현황]

2007년 현재 약 12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벼농사를 짓고, 참외와 딸기도 재배한다. 2006년 경상북도 장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부터 5일장인 꽃질장이 열렸으나 1960년대에 없어졌다. 관련 유적으로는 절강시씨 시조를 기리는 재실인 내화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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