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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리 상노다마을 전의이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54
한자 月城里上老多-全義李氏集姓村
영어의미역 Single-Clan Village of Jeonui Yi Clan in Wolseong-ri Sangnoda Maeul
이칭/별칭 웃놉닥,상노리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 상노다마을지도보기
집필자 이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동성마을
가구수 약 30가구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에 있는 전의이씨 동성마을.

[명칭유래]

월성리에는 높음방, 장자골, 수리니미, 상노다, 바래미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높음방은 마을에서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고방이라고도 한다. 장자골은 키가 8척이나 되는 강하수라는 장군이 마을에 정착하였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장자리·장척리라고도 한다. 수리니미는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이가 수레바퀴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다.

상노다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의 경종사호(景宗賜號) 문제로 제주도로 귀양 가다가 이곳에서 잠깐 쉬면서 노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노다(老多)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달리 웃놉닥·상노리라고도 한다. 바래미는 낙동강 변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바람이 세게 부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정조전의이씨 이복후가 이웃한 상곡마을에서 지금의 수리니미마을로 들어와 마을을 개척하였고, 그 뒤 후손들이 상노다마을로 분가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상곡마을에는 1611년(광해군 3) 무렵부터 입향조 이지화가 대구 달성에서 옮겨 와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지금도 상곡마을과 인접한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를 중심으로 전의이씨 집성촌이 여러 곳 형성되어 있다. 하산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내고 현감 벼슬을 한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 장군이 입향한 곳이다.

상노다마을이 속한 월성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벌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로동·장척동·남양동을 병합하여 월성동이라 하고 다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다산면 월성리가 되었다.

[현황]

2007년 현재 약 30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참외를 재배하고 더러는 이모작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문화 유적으로는 월성리 유물산포지, 진양강씨 기념물인 추원재, 송시열을 배향한 노강서원(老江書院)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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