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838
한자 鄭種
영어음역 Jeong Jong
이칭/별칭 묘부(畝夫),오로재(吾老齋),양평(襄平)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별
생년 1417년연표보기
몰년 1476년연표보기
본관 동래
대표관직 경주부윤

[정의]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정절공(靖節公) 설학재(雪壑齋) 정구(鄭矩)이다. 정구는 좌찬성을 지냈으며, 예서·초서·전서를 잘 써서 이름이 높았다. 청렴하고 예의가 발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그의 자손들 역시 양주와 수원 등 경기 지역에서 많이 살았다. 아버지는 판관 정선경(鄭善卿)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판서 평간공(平簡公) 이발(李潑)의 딸이다. 정선경 대 이후에 후손들이 고령으로 옮겨가 세거하였는데, 이는 어머니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정종(鄭種)이시애(李施愛)의 난과 이징옥(李澄玉)의 난을 평정한 뒤 고령군 덕곡면 노리 오노곡(吾老谷)에 이거하여 살게 되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성주와 고령 일대에 정착하게 되었다. 부인은 두 명을 두었는데, 영양최씨(永陽崔氏) 사정 최효흥(崔孝興)의 딸과 전의이씨(全義李氏) 진사 이인덕(李麟德)의 딸이다.

[활동사항]

정종[1417~1476]은 무과에 등제하여 1453년(단종 1) 11월 이징옥의 난 때 종성절제사로서 이를 포살(捕殺)한 공으로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그 뒤 행종성도호부사에 임명되었다가 곧 행상호군(行上護軍)이 되었으며, 1457년(세조 3) 3월 충청도절제사가 되었고, 1461년(세조 7) 10월에는 중추원부사로서 홍익성(洪益成)과 함께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3년(세조 9) 경상좌도도절제사를 지냈고,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의 난 때에는 율원군(栗元君) 이종(李從)의 휘하로 총통군(銃筒軍)을 이끌고 출전하여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어 충청도도절제사를 거쳐 경주부윤이 되었다. 1472년(성종 3) 한황(旱荒)이 계속되어 농작물에 대한 손실을 조사하였으나, 이에 대한 착오가 많은 책임을 지고 파직되어 경기도 포천으로 정역(定役)되었으나 1476년(성종 7) 정월 풀려났다.

[묘소]

묘소는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장방동(長房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징옥을 포살한 공으로 군공(軍功) 1등, 1454년(단종 2) 세조의 즉위를 도와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그리고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에 책록되고 행충무위상호군겸오위장에 임명되었으며, 처음 칠산군(漆山君)에 봉하여졌다가 곧이어 동평군(東平君)으로 개봉되었다. 고령군 덕곡면에 있는 반암서원(盤巖書院)와 경상남도 거창군에 있는 영빈서원(瀯濱書院)에 제향이 되었다.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