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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961
한자 李鳳朝
영어음역 Yi Bongjo
이칭/별칭 내문(乃文),만하(晩霞)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자|관료
출신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별
생년 1860년연표보기
몰년 1937년연표보기
본관 여주
대표경력 고령군수[서리]

[정의]

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교육자이자 관료.

[개설]

이봉조(李鳳朝)[1860~1937]는 본관이 여주(麗州)로, 자는 내문(乃文)이고 호는 만하(晩霞)이다. 아버지는 이인후(李寅厚)이다. 아들로 이정우(李正宇)[1881~1924]와 이정근(李正根)[1889~1949]을 두었다. 아들들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후인들의 귀감이 되었는데 큰아들 이정우는 한주학파의 대표적 유학자인 곽종석에게 사사해 사장문학(詞章文學)에 능하였고, 둘째 아들 이정근은 격변하는 시대에 조응하기 위해 신학문을 익혀 고령 지역에서 교육 운동을 전개하는 남형우·신성모 등과 교류하면서 청소년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사항]

이봉조는 1907년(순종 1) 고령군 주사에 서임되었다가, 고령군수 서리로 승진하였다. 향중(鄕中)에 의논하여 지금의 고령초등학교 전신인 고령보통학교 창립에 공헌하여 초대 교장을 역임하였다. 유림들이 향교의 유지를 위한 취지에서 만든 모성계(慕聖契)를 함께 조직하여 문묘를 중수하고, 향약을 초(草)하여 교풍 진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1920년 대홍수 때 가옥을 잃은 100여 가구의 수백 명에 달하는 수재민에게 고령군 고령면[현 대가야읍] 연조리 소재 자신의 집을 무료로 개방하여 거주하게 하였고 식량까지 지원하는 등 구호 활동에도 앞장섰다.

1930년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반룡사를 중수하여 퇴락해 가는 사찰 건물을 정비하였고, 고령 포교당(布敎堂)의 관음전(觀音殿)과 칠성각을 건립하여 고령 지역의 불교를 진흥시켰다. 또한 관개 제방 사업에도 공을 많이 세워 송덕비가 건립되었다. 유불(儒彿)을 겸비한 교양인으로서 교육 사업과 유학 진작 및 군민을 위한 다방면의 업적을 남겼으며, 1937년 타계하였을 때 군민장을 거행하여 많은 군민이 애도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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