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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301
한자 日常服
영어의미역 Daily wears
이칭/별칭 평상복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정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의례가 아닌 일상생활이나 작업할 때 입는 전통 복식.

[개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사람들은 계절별로 직물의 소재와 종류를 다르게 선택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다. 추운 겨울에는 솜옷이나 겹옷, 혹은 여름옷을 겹쳐 입기도 하였다. 더운 여름에는 삼베와 같은 시원한 소재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옷의 형태는 저고리와 치마 혹은 바지가 오랜 세월 계속되었으나, 20세기가 되면서 옷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남자는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으나, 여자는 풍성하고 다리 끝을 좁게 매어 고무줄을 넣은 ‘몸빼’ 바지를 많이 입었다. 6·25전쟁 때는 구호물자로 받은 옷을 줄이거나 뜯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고, 군복을 검게 물들여 입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서양의 문물이 급격하게 들어오면서 고령 지역에서도 서양복을 일상복으로 입게 되었다.

[변천]

옛 고령 지역의 의복 차림을 보면, 남자는 겨울에는 무명옷과 명주옷을 입고, 보온을 위해 옷에 솜을 넣고 토시를 양팔에 끼었으며, 외출을 할 때는 두루마기를 걸쳤다. 여름에는 삼베옷이나 모시옷을 입으며, 머리에는 뾰족한 상투를 올려 동곳을 꽂는데, 보통 은(銀)이나 산호(珊瑚)로 만든 동곳을 사용하였다. 머리에는 망건을 두르고 탕건을 쓰고 그 위에 갓을 썼다. 수염은 깎지 않고 길게 기르며, 긴 담뱃대를 휴대하고 쌈지나 주머니를 지녔다. 비가 올 때는 갓이 젖지 않도록 갓 위에다 고깔을 쓰고, 추운 겨울에는 남바우를 썼다. 신은 짚신, 삼신[미투리], 깔집[가죽신], 나막신[비 올 때 신는 나무로 만든 신] 등을 신었으며, 개항기 이후에는 고무신을 신었다.

여자는 하의로 단속곳·풍채바지·속치마·겉치마를 입었고, 상의는 속저고리·겉저고리를 입었으며, 치마는 염색 옷을 많이 입었다. 머리치장을 할 때 처녀들은 길게 땋아서 갑사댕기를 맸다. 나이든 부녀는 다발 머리를 올렸고, 젊은 부녀는 낭자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개항기 이후 남성은 속적삼·적삼·저고리 위에 마고자와 두루마기를 착용한 후 소고의, 고의 위에 바지를 입고 대님과 행전을 착용했다. 여성은 저고리, 치마, 버선을 기본으로 속적삼과 단속곳, 바지,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를 입었다. 위에는 배자와 덧저고리를 착용했는데, 이후 마고자와 두루마기, 속치마 등도 등장했다.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 삼동마을우곡면 도진리 남자들은 ‘땅중우’로 일컫는 속옷과 무명바지, 속적삼, 저고리를 주로 입었다. 외출을 할 때는 두루마기나 도포를 갖추었다. 여성들은 6·25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은 한복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했다. 생활이 넉넉한 경우에는 ‘천의’라고 일컫는 두루마기를 입고 외출했다. 그러다가 ‘월남치마’로 일컬어진 고무줄을 꿴 통치마를 입기 시작했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삼동마을에 참외농사가 도입되면서부터 실용성을 고려하여 일명 ‘몸빼 바지’를 입기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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