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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리 조지 동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333
한자 鳳山里鳥枝洞祭
영어의미역 Bongsan-ri Joji Village Ritual
이칭/별칭 새가지 마을 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
집필자 이창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첫 시
의례장소 마을 뒤 대봉산 중턱 제당지도보기
신당/신체 산제당|슬레이트 콘크리트|소나무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봉산리에서 정월 대보름 첫 시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동제는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기본으로 하여 재앙과 재액을 방지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괴질이 없고 무사고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해서 행한다. 고령 지역에서 동제는 당제, 골맥이, 동신제, 당산제, 산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봉산리경주최씨 집성촌으로 임진왜란 이후 개척된 마을이다. 봉산리의 자연마을 명칭은 새가지[샛가지] 또는 조지동(鳥枝洞), 봉지동(鳳枝洞)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는 마을 앞 늪의 형상이 새가 날아가는 것과 같고, 숲과 늪에 많은 새들이 서식하여 이렇게 명명되었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봉산리에서는 풍물 전통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풍물에 대한 자긍심은 봉산리 조지 동제가 전형적인 풍물굿 형의 동제로 전승될 수 있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주민들은 마을 뒤 대봉산 중턱 제당에서 제를 지낸다. 제당의 명칭은 산제당이며, 소나무 군락과 당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전에는 당집 뒤 아름드리 소나무를 중심으로 한 소나무 군락이 제당이었지만, 1991년 제사 때 어둡고 추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당집을 신축했다.

[절차]

정월 열흘날에 마을 주민들이 마을 회관에 모인 후 서낭대를 내려 제관과 축관 1명씩을 선정한다. 서낭대는 7m 정도의 굵은 대나무로 맨 꼭대기에 소나무 잎이 달려있고 가운데에 서낭 깃발이 달려 있다. 제관들은 선정되는 순간부터 상주나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는다. 공동 우물에서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를 하고, 육식을 금하며, 부부 간에 합방을 하지 않는다. 이후 제관들은 대문과 마을 공동 우물, 당산 가는 길에 있는 모과나무, 당집 순으로 금줄을 치는데, 제관 집은 오른새끼의 금줄을, 축관 집에는 왼새끼의 금줄을 친다. 제관 집에 오른새끼를 치는 이유는 축관보다 지위가 높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제관과 축관은 금줄을 친 후 열 하룻날 새벽에 제물장을 보러 간다. 그리고 정월 열 이튿날 새벽에는 대문 앞, 마을 공동 우물, 마을 입구 순으로 황토를 뿌려 주민들과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 정월 열 나흗날 오후부터는 제관의 부인이 제물을 준비하고 축관과 청년들은 돼지를 잡아서 삶는다. 제물 준비가 끝나면 축관은 제관 집에서 소지 종이를 준비한다.

산제는 정월 대보름 첫 시에 올리는데, 먼저 마을 청년들이 풍물을 치면서 마을을 순행하고 서낭대를 당집으로 모시고 올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풍물패는 당집으로 가기 전 공동 우물 네 곳을 들러 우물 앞에 서낭대를 세우는 것으로 용왕님께 인사를 드린다. 밤 11시 경 제관과 축관, 마을 청년 2명이 당산에 제물을 가지고 올라가고, 이후 제관은 당집을 청소하고 진설한 다음 촛불을 밝히고 분향한다.

이윽고 12시가 되면 제관과 축관이 재배하고 술 두 잔을 올린다. 제의 진행은 기제사와 유사하게 메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은 후, 축관이 고축하는 동안 제관은 부복한다. 고축이 끝나면 축관은 소지를 올리고, 제관은 계속 절을 한다. 새벽 2시가 되면 제상의 미역국을 물그릇으로 바꾸어 배례하고 술 두 잔을 올리면서 제관과 축관이 재배한 후 제사를 마친다. 제사가 끝나면 돼지머리와 제물을 다른 상에 조금 차려 가장 큰 소나무 아래에 묻고, 그 자리 위에 메 두 그릇을 엎어 놓는다. 이후 제상을 물린 후 음복하고 제관 집으로 내려오면 산제는 끝난다.

산제를 마치면 바로 용왕제를 준비하는데, 새벽 2시 50분 경 제물을 들고 공동 우물 한 곳에 가서 축관이 진설하고 분향을 한다. 용왕제에서는 제관 혼자 절을 하는데, 먼저 재배를 하고 술 두 잔을 올린 후 첨잔과 재배 순으로 진행한다. 이어 축관이 철상을 하고 제물을 그대로 두는데, 용왕제에서는 고축을 하지 않는다.

새벽 3시 경, 산제와 용왕제를 마치면 제관 집과 축관 집의 금줄 및 황토를 걷는다. 금줄은 “모든 액을 다 떠내려가게 해주이소.”라는 말과 함께 낙동강에 떠내려 보낸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 입구에 뿌린 황토를 청소하고 제관 집에 도착하면 산제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축문]

산제 축문이 언제 작성되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주민은 없으나 ‘서낭당 동제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OO년(年) OO월(月) OO일(日)/ 유학OOO 감소고우/ 국두신지 전에왈 유산유신/ 유아생인 비선행인 비인해신/ 인선행인 일동안강 신비야육/ 곡비아장 국지질병 가금불상/ 육축번성 산농등양 소밀관재/ 지기비유 수화환향 비일회소/ 태시차일 신황외사 존조정길/ 강등유수 황화귀상 영영혈/ 향백배탄 성서사 상향.”

[부대행사]

동제 후 정월 대보름 오전 10시 무렵에는 동민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경비 결산과 새로운 유사를 선출한다. 이후 오후 3시부터 맞붙기 방식으로 반별 윷놀이를 한다. 윷놀이는 마을 회관 앞 큰 도로에서 동장의 진행으로 실시된다. 또한 저녁 6시 무렵에는 지신밟기를 하는데, 2005년에는 제관과 축관 집만 실시하였다.

[현황]

봉산리 조지 동제는 경주최씨의 혈연적 유대를 바탕으로 한 강한 자부심이 내포되어 있다. 고령화로 인해 동제를 전승할 사람이 없는 여느 마을과 달리 청장년층부터 노년층까지 산제에 관여하고 있다. 특히 수박 농사로 고소득을 올리는 청장년층이 산제의 뒷일과 풍물을 책임지고 있다. 봉산리 산제는 제관 선출부터 대농놀이까지 풍물이 결합되지 않을 때가 없다. 또한 일반적으로 타 지역의 동제에서는 내장과 피를 제거한 돼지를 제물로 쓰는 것이 관례이나 봉산리에서는 현재까지 돼지 피와 창자까지 제물로 사용하고 있다. 금줄의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제관 집의 금줄은 오른새끼로 꼬고 축관의 것은 왼새끼로 꼬는 것을 지속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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