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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의 비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427
한자 新洞-
영어의미역 Binyeo of Sin-d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김남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지명전설|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왕비|궁녀|월광태자|이사부|신라군
관련지명 신동|옥잠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왕비와 궁녀가 떨어뜨린 비녀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에서 옥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신동의 비녀」대가야읍 신리 지역에 왕비와 궁녀가 비녀를 떨어뜨리고 가자 그 곳을 옥잠이라고 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대가야의 멸망 당시 왕은 ‘도설지’였고, 건국 후 520년 만에 신라에 병합되었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야읍] 지산리 주민 김도윤[남, 77]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또한 2006년 2월 고령군청이 계명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위탁한 ‘고령 지역 설화 DB 구축 및 아동용 설화집 제작을 위한 스토리 보드 구축 사업’의 1차년도 연구결과 보고서의 부록인 『고령 지역 설화 자료집』에도 실려 있다.

[내용]

고령군 고령읍[현 대가야읍] 신동[현 신리] 일대를 옥잠이라 하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진흥왕 때 신라의 명장 ‘이사부’가 5천 명을 거느리고 대가야국을 급습해 왔다. 대가야국은 이미 맞서 싸울 수 없을 만큼 쇠퇴해져 있었다. 금산망산성을 최후의 보루로 싸우다 회천을 건너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사부의 군대는 강물을 건너 쉽게 도읍지인 이곳 고령까지 침공해 왔다. 이에 당황한 대가야국의 마지막 임금인 ‘월광태자’는 왕비와 수십 명의 궁녀를 거느리고 달아났다. 궁성을 빠져 나와 지금의 대가야읍 신리에 이르렀을 때 왕녀와 궁녀들의 머리는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다.

나라가 망해 가는데 무엇을 바라겠느냐, 잠시 여기를 떠나지만 반드시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다짐으로 왕비와 궁녀들은 비장한 각오 아래 비녀를 떨어뜨리고 가기로 하였다. 왕비와 궁녀가 비녀를 떨어뜨리고 간 곳이 바로 신리 일대여서 이곳을 ‘옥잠’이라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신동의 비녀」의 주요 모티프는 ‘왕비와 궁녀가 떨어뜨린 비녀’이다. 이 이야기는 피난을 가던 왕비와 궁녀가 가야국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의 표시로 신동에 비녀를 떨어뜨리자 이곳을 옥잠이라 불렀다는 지명전설이다. 대가야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월광태자의 일화가 담긴 낫고개, 낫질, 나대리와 같은 지명도 가야와 관련이 있다. 바로 「낫고개에 얽힌 이야기」월광태자가 비단 옷을 입고 피난을 갔던 데에서 유래되었다는 지명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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