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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고개 경주너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446
한자 -慶州-
영어의미역 Origin of The name of Bawi Pass Gyeongjuneodeul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집필자 남경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전쟁담|지략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왜병|의병|마을 주민
관련지명 명곡동|경주너들|가야산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임진왜란 때 가야산으로 피신한 의병|무기로 쓸 돌을 들고 피난한 의병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서 경주너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바위고개 경주너들」은 임진왜란 때 왜병을 피해 무기로 쓸 돌을 들고 피난한 의병의 전쟁담이자 지명유래담이다. 덕곡면 노(老)1리와 노(老)2리 사이에 위치한 명곡동에 ‘경주너들’이라는 돌밭이 있다. 명곡동 입구에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20여분 걸어 올라가면 돌만 한가득 쌓인 돌밭이 나온다. 그 곳에 자리 잡은 지 오래 되었을 법한 크고 작은 갖가지 크기의 바위가 이름 모를 잡초에 뒤엉켜 산 중턱의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경주너들’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0월 14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예리 421번지[예동길 14]에 거주하는 주민 도상철[남, 64]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고령군 덕곡면 노1리와 노2리 사이에 위치한 명곡동에 있는 돌밭 ‘경주너들’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때 경주에 왜놈들과 조선 의병들 사이에 큰 싸움이 있었다. 농사만 짓던 각 마을 주민들이 모여 결성한 의병들은 열심히 싸웠으나 신식 무기로 무장한 왜놈들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라 의병들은 가야산으로 피난하기에 이르렀다. 가야산으로 피난을 왔지만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열심히 싸웠다. 그래서 무기가 될 만한 돌들을 이고 지고 앞치마에 싸서 피난하였다. 명곡동의 ‘경주너들’에 쌓여 있는 바위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경주에서 싸온 돌인 것이다. 의병들은 가야산으로 피난하면서 경주에서 싸온 돌을 지쳐서 이곳에 내려놓고 만 것이다. 비록 왜놈과의 싸움에서 이기지는 못하였으나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운 우리 조선인의 의지의 징표가 바로 이 ‘경주너들’인 것이다. 지금은 오래된 바위만 남아 그 때의 일을 상기시키고 있다.

[모티프 분석]

「바위고개 경주너들」의 주요 모티프는 ‘임진왜란 때 가야산으로 피신한 의병’, ‘무기로 쓸 돌을 들고 피난한 의병’ 등이다. 고령군 덕곡면 명곡동에 있는 돌무더기들은 임진왜란 때 왜병과 싸우다 힘에 부친 의병들이 경주에서부터 무기가 될 만한 돌들을 들고 피난한 전쟁담이다. 또한 전쟁에서의 의병들의 지략담인 동시에 조선인의 굴하지 않는 의지의 징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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