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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하씨 효열각에 얽힌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1485
한자 晋州河氏孝烈閣-
영어의미역 Tale of Filial Piety Shrine for Lady Ha from Jinju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남경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열부담
주요 등장인물 진주하씨|조정필
관련지명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남편의 3년 상을 치르고 뒤를 따라 자결한 열부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서 효열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진주하씨 효열각에 얽힌 이야기」는 정성껏 간호하던 남편이 사망하자 3년 상을 치르고 자결하여 정절을 지킨 조정필 부인에 대한 열녀담이다.

[채록/수집상황]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주민 조영건[남, 68]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내용]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는 함안조씨 가문의 효열각이 있어 효자·열부의 전설을 생생히 전해 주고 있다. 함안조씨 가문에는 함양 조정필의 처요, 진사의 딸로서, 이 가문에 시집온 진주하씨가 있었다. 1632년(인조 3)에 태어나 18세 되던 해에 조씨의 처가 되었는데, 품성이 온화하고 남편과 부부애가 좋아서 온 마을에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행복도 잠시, 하씨가 시집온 지 2년 만에 남편이 병환이 나서 자리에 몸져누웠다. 남편의 병환이 위중해지자 하씨 부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나버렸다. 하씨는 곡하며 3년 상을 치르고 난 뒤, 목욕재개하고 남편 무덤가에 찾아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에 지방 사림들은 그 정절을 기려 조정에 보고하였고, 1757년(영조 33) 예조에서 정려를 명하여 정려각을 세웠다.

[모티프 분석]

「진주하씨 효열각에 얽힌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남편의 3년 상을 치르고 뒤를 따라 자결한 열부’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충·효·열은 국가, 사회, 가정의 질서를 지키는 윤리 가치로서 존중되어 왔다. 조선시대 이래로 윤리는 유교의 실천적 규범으로 인식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충·효·열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였다. 이러한 윤리적 가치가 인간의 기본적 덕목으로 추앙되었기에 충, 효, 열과 관련된 설화도 대량으로 형성·전승되어 오고 있다. 「진주하씨 효열각에 얽힌 이야기」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내려오는 전형적인 열녀 주제의 설화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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