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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A020302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창언

[국도 변에 늘어선 상가들]

대가야읍 연조리는 이웃한 쾌빈리에 비하면 상가들이 많지 않다. 대가야읍에서 대구와 성주, 합천 방면으로 이어진 도로에 접한 부분이 적고, 고령장을 비롯한 상가가 밀집한 지역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가야읍에서 상가는 주로 쾌빈리에 밀집해 있고, 관공서는 지산리에 밀집해 있다. 이에 비해 연조리는 아파트와 빌라, 단독 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이다.

연조리대가야읍에서 성주 방면으로 이어진 국도 33호선과 접해 있다. 이 도로는 고령군 운수면과 성주군 수륜면, 용암면 일대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고령장을 이용할 때 반드시 거쳐 가는 길이다. 따라서 연조3리의 국도 변은 성주 방면에서 고령장을 이용할 때 길목에 해당하는 곳으로 통행인이 많았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일부 연조리 사람들이 이곳에 상점을 열면서 생업의 현장이 되었다.

사실 이곳은 상가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경신년과 병자년 대홍수 때 집을 잃은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새동네이다.

당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은 회천 변에 위치했던 고령장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연조리 국도 변의 상가는 경기의 부침에 따라 영업에 커다란 영향을 받아 왔는데, 그 중에서 소규모 잡화점은 규모가 큰 마트와의 경쟁에 밀려 경기 여파와 상관없이 침체되고 있다.

[동네 사랑방을 겸한 가게]

연조3리에 살림집이 있는 최수인1934년생] 씨는 1972년 고령과 성주를 잇는 국도 변인 쾌빈리에 상점을 차렸다. 당시 이 도로는 비포장이었고 폭도 현재보다 훨씬 좁은 5m 안팎이었다. 국도를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는 있었다. 최수인 씨가 잡화점을 차릴 무렵 비포장의 도로 변에는 철물점, 잡화점, 주막 등이 몇 채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무렵 국도를 넓혀 포장 공사를 마친 후부터 자동차와 사람들의 왕래가 늘어났는데, 잡화점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인근 연조리쾌빈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최수인 씨의 잡화점에는 막걸리·소주·맥주 등의 주류와 담배를 비롯해 지역 사람들이 일용하는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였다. 상점이 드물었던 당시에는 지역 사람들의 사랑방과 같은 역할도 하여 부근에 거주하는 단골손님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인근에 고령초등학교가 위치한 것을 고려하여 최수인 씨는 학생들이 찾는 문구류와 과자류도 취급하였다. 이처럼 생필품에서 문구류까지 다양한 상품을 취급한 최수인 씨의 잡화점은 넓지는 않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물건을 구입하는 만물 상회 겸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사랑방과 같은 곳이 되었다.

최수인 씨의 잡화점은 2005년경까지 장사가 잘 되었다. 자가용을 비롯한 각종 차량의 통행이 늘어나면서 고령읍에서 외지로 나가는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최수인 씨의 잡화점은 날로 성업하였다. 주말에 차량을 이용해 나들이 가는 손님들이 잡화점에서 음료수와 과자류를 구입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오전 5시부터 가게 문을 열어 밤 11시 무렵까지 장사를 했다고 한다.

[마트와는 경쟁이 안 돼요]

비교적 장사가 잘 되었던 최수인 씨의 잡화점은 2005년 무렵 인근에 규모가 큰 ‘마트’가 들어서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과 종류 그리고 서비스에 있어 마트에 경쟁할 수 없는 잡화점으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잡화점들이 침체되면서 잡화점에 물건을 대어 주던 중간 상인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최수인 씨의 잡화점에 물건을 대어 주던 7~8명의 중간 상인도 피해를 입었는데, 이 중에는 파산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마트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지역에 마트가 6개 정도로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구와 고령을 잇는 국도 26호선이 확장되고, 88올림픽고속국도의 대구와 동고령 구간이 확장되는 등 고령 지역 사람들의 대구 왕래가 훨씬 편리해지면서 고령 지역에 자리한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최수인 씨의 만물 상회도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어 취급하는 상품도 최소한으로 하였다. 하루에 담배 대여섯 갑 정도 팔리는 정도가 되었지만 업종을 바꾸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고, 세를 놓으려 해도 입주자가 없는 형편이어서, 이젠 인근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모여 소일하는 사랑방의 모습만 남아 있다고 한다.

[정보제공]

  • •  최수인(남, 1934년생, 고령읍 연조3리 주민)
  • •  설기선(여, 1935년생, 고령읍 연조3리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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