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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A030105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용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 전승의 선봉장! 고령문화원은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발굴, 집성하고 교육과 경연 대회 등을 통해 이를 전승해 왔다. 지금까지 유일성, 신용수, 유병규, 허동량, 최상호 씨 등이 차례로 문화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고령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최상호[1931년생] 씨는 여든 문턱을 넘어섰지만, 고령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착이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그는 30대 후반부터 고령문화원에 몸을 담아 부원장을 두 번씩이나 맡았다. 지금은 직전 원장의 잔여 임기까지 포함하여 6년 넘게 원장 임무를 다해 오고 있다.

[연조리에서만 30년 넘게 산 고령 토박이]

최상호 씨는 대가야 왕가의 숨결이 배여 있는 대가야읍 연조1리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온 고령 토박이다. 젊은 시절 학업을 위해 대구로 유학 간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령에서 살아왔다. 교사 출신인 그의 부인[1933년생]은 옛 고령유치원에 이어 가야어린이집을 차례로 운영하며 평생을 지역 사회 유치원 교육에 힘써 왔다.

최상호 씨는 일제 강점기 대가야읍 양전동[옛 개진면]에서 지역 부호이자 기독교 집안의 6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고령 금림공립초등학교[현 고령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로 나가 6년 학제의 계성학교와 옛 대구대학교 3학년을 중퇴했다.

최상호 씨는 대학 재학 중 고령 사람이던 교주의 추천으로 대구 대성중학교와 대성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로도 2~3년 동안 봉직했다.

[학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하다]

최상호 씨의 청년 시절은 일제 강점과 광복, 6·25전쟁 등으로 자유롭게 운신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계성학교 5학년 때 전쟁이 발발하여 1950년 8월 1일 학병[학생 신분의 군인] 2기로 입대하여 경기도 포천 일동과 강원도 횡성 전투에 참여했다. 당시 같은 반에서 16명의 동료가 포병 20대대에 자원입대했으나 전장에서 모두 사망하고 그를 포함해 3명만이 살아남았다. 이 중 2명도 포로가 되어 북한에 남겨졌다.

최상호 씨가 입대할 무렵에는 대구 인근의 영천군과 칠곡군 다부동까지 인민군이 내려왔다. 대구시 북구 칠성동 시가지에는 인민군이 쏜 포탄이 3발이나 떨어졌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칠곡군 다부동과 달성군 현풍 등지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는데, 전세가 이처럼 급박해지자 한때는 국군의 대구 철수까지 거론될 정도가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 사회 일꾼으로, 고령문화원장으로 재직하다]

최상호 씨는 대학 재학 중이던 23세 때 당시 경상남도 의령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두 살 아래인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크게 아파 큰아들로서 집안을 지키기 위해 귀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줄곧 고령에 거주하면서 지역 사회 봉사에도 열성을 다했다. 농업협동조합장과 재향군인회장, 경북도정 자문위원, 고령군의회 의장, 경북의장협회 회장 등 그가 맡았던 직위를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최상호 씨는 고령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전승하는 일에도 열성적이다. 특히 우륵박물관 개관을 비롯해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 가야금 보급 등 고령을 ‘우륵과 가야금의 고장’으로 각인시키는 데 많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출향 인사 초청 행사와 시조창 보급, 풍물대회 등도 고령 문화 보급과 창달을 위한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고령문화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야금 보급 운동은 실버가야금반과 각급 학교 가야금반 운영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지역 거주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버가야금반을 결성하여 기능을 연마한 후 해마다 대가야체험축제 기간 중 개최하는 경연대회에 참여토록 한다. 특히 전국우륵가야금경연대회는 전국적인 대회로서 대통령상이 제정될 정도로 위상이 높다. 후자는 관내 초등학교 5개교와 중고등학교 1개교를 지정하여 가야금을 보급하고 기능을 전승시킨다.

고령문화원에서는 출향민 초청 행사도 열고 있는데, 이는 아이와 어른을 포함한 각처의 출향 인사들을 초청하여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교육시킨 후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지역 홍보 대사’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근거지에서 대가야 문화를 널리 알리는 첨병 역할을 다한다. 고령문화원에서는 2010년부터 시조창 보급을 위해 전국 경연 대회도 추진 중이다. 최상호 씨의 온화한 미소 속에 대가야의 옛 모습들이 하나둘 파노라마처럼 차례로 환생되는 듯했다.

[정보제공]

  • •  최상호(남, 1931년생, 고령읍 연조리 주민, 고령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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