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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C010105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동락

도진리에는 모두 네 곳의 마을길이 있다. 도진1길에서 도진2길로 둘러보는 1코스인 웃마길과 도진3길과 도진4길을 둘러보는 2코스인 아랫마길을 따라 강변에 자리한 양반 마을을 둘러보기로 한다.

[웃마길로 둘러보는 도진리 풍경]

문연서원 유허지 는 도진리로 들어오는 지방도 67호선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5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것이 ‘죽연박선생 효행정려유허비’로, 선조죽연 박윤(朴潤)[1517~1572]에게 내린 효자 정려비가 세워진 곳에 1981년에 건립하였다. 다음은 ‘증이조참판양죽당 박공기적비’로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박정완(朴廷琬)[1543~1613]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건립하였다.

다음은 ‘증숙인함안조씨 정려유적비’로, 조선 경종 때에 박사전(朴思全)의 처 함안조씨[1641~1717]에게 내려진 효열 정려비를 1981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그 옆의 것은 ‘도계박기언공 효행비’로 박기언(朴基彦)[1891~1956]의 효행을 추모하기 위해 1985년 건립하였다. 그 뒤에 위치한 비가 ‘문연서원 유허비’이다.

1696년에 창건된 문연서원은 1868년에 훼철되었는데, 1940년 그 유허지에 비를 건립하였다.

문연서원 유허지의 왼쪽 편 산 능선은 학암정(鶴巖亭)이 있던 자리였다. 학암정은 1585년에 박정번이 건립한 곳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 문연서당을 열어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그러다가 1696년 문연서원이 건립된 이후 정자로만 사용했으나 도진리 마을로 진입하는 지방도 67호선을 개설하면서 훼손되어 현재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문연서원과 함께 학암정을 복원하는 일이 고령박씨들의 숙원 사업이라고 한다.

도진리로 진입하는 마을 입구에는 화직간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화직간은 마을 출신 인물이 벼슬길에 오르거나 과거에 급제하여 돌아올 때 이곳에 깃발을 꽂고 예를 갖춘 곳이라고 한다. ‘영화로운(華) 관직(職)의 깃대를 꽂는 곳[竿]’이라 하여 ‘화직간’이라고 했으며, 화짓대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또, 나라에 국상이 났을 때 병풍을 치고 분향소를 설치하여 지방 사림들이 모여 예를 드리던 곳이기도 했다. 마을 쪽 아랫부분에 음식을 장만하기 위한 솟을 걸어 놓고 대나무 깃발이 펄럭이는 언덕이라고 하여 ‘햇대만댕이’라고도 불렀다. 화직간 터 옆에는 ‘도진충효마을 지정비’가 서 있다. 충효마을로 지정된 도진리의 역사와 충효 내역을 기록해 두었다.

모현정(慕賢亭)은 우곡면 노인회관과 우곡보건지소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모현정 은 원래 죽연 종가의 사랑채로 1803년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 문연서원이 훼철되자 후손들과 사림에서 임시로 오현[박윤, 박택, 윤규, 박정번, 최여설]의 위패를 모시면서 문연재(文淵齋)로도 불렸다.

모현정에서는 1868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다섯 문중에서 서원제를 올린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 건물로, 도진리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도진리에서는 2009년 8월 문연서원 창건 이후 역대 서원의 원장과 부원장 등의 명단과, 관아에서 문연서원을 지원한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는 「문연서원 수임록」, 「문연서원 부임록」, 「문연서원 차비안」 등의 자료가 발견되었다.

모현정 뒤편에는 죽연 종가와 사당이 위치한다. 현재의 종가와 사당은 1800년대 중반에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도진1길을 따라 안골 쪽으로 올라가면 죽연(竹淵) 박윤(朴潤)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죽연정사(竹淵精舍)가 위치해 있다.

죽연정사 맞은편에는 낙락당(樂樂堂) 박택(朴澤)을 기리기 위한 낙락당(樂樂堂)이 자리 잡고 있다. 낙락당에서 도진2길로 들어서면 도진리의 중앙부에 도진충효관이 건립되어 있다.

도진충효관은 2005년 2월 준공하여 도진리의 충효 관련 문적과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아랫마길로 둘러보는 충효마을 전경]

마을 앞으로 지나는 도로에서 도진3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좌측에 남와구거(南窩舊居)가 위치해 있다. 박정번의 7세손인 남와(南臥) 박민국(朴敏國)이 1805년에 건축한 전통 가옥이다. 도원정사·불휴당 등으로 불리는데, 1939년부터 1963년까지 남고(南皐) 박응형(朴應衡)의 재사로 사용되었다.

도진3길을 따라서 진행하다가 우곡면사무소를 지나 좌측 골목으로 접어들면 남고정(南皐亭)이 위치해 있다. 1973년 박응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남고정에서 마을 뒤편으로 조금 더 가면 ‘도진리 은행나무’가 있다. 나무의 둘레는 대략 3m 정도이고, 높이는 20m가 조금 넘어 보인다. 수령은 대략 600년 정도 된다고 한다. 지금은 노목이 되어 수세가 좋지 않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무성하여 여름이면 그늘이 되고 명절 때는 그네를 타고 놀았다고 한다.

은행나무에서 우측으로 보면 경매정(景梅亭)이 위치해 있다. 박정번의 아들인 매헌 박효선(朴孝先)을 기리기 위해 1956년 건립한 곳이다.

도진3길은 대장산으로 오르는 MTB 도로로 연결된다. 이 도로를 따라 300m쯤 올라간 후 좌측 산기슭으로 가면 도진리 바위구멍 유적이 있다. 도진리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진리 마을 뒤의 대장산 정상 능선에는 도진리 산성도진리 고분군이 위치한다.

도진리 산성은 대가야 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가혜성(加兮城)일 가능성이 높다. 도진리 고분군 역시 대가야 시대 도진리 일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겨 놓은 유적이다.

청룡사(靑龍寺)도진리 마을의 안산인 청룡산의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원래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뚜렷한 근거는 없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그 터에 남와 박민국이 1805년 이전에 용연재(龍淵齋)를 짓고 후진을 양성했으나 1805년 도진마을 내에 남와구거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1850년경에 무너졌다.

그 뒤 유허지로 전해 오다가 1945년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한 김해김씨 자매가 청룡사를 재건했다. 절 아래에 있는 청백당(淸白堂) 부도는 합천에서 1948년에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 본 두 갈래 길을 통해 650년 전통의 도진마을을 둘러보았는데, 대장산모듬내[회천]가 어우러져 만들어 놓은 수려한 경관과 그 속에서 충과 효를 실천하면서 살아온 도진리 사람들의 삶이 녹아져 있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 1코스 웃마길 : 문연서원 유허지-화직간-모현정-죽연 종가-죽연정사-낙락당-도진충효관

• 2코스 아랫마길 : 남와구거-남고정-도진리 은행나무-경매정-도진리 바위구멍 유적-도진리 고분군-도진리 산성-청룡사

[정보제공]

  • •  박태규(남, 1938년생, 고령박씨 소윤공파 대종회장)
  • •  박돈헌(남, 1948년생, 우곡면 도진리 주민, 도진충효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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