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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C010201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동락

[충효를 실천한 선조의 유품을 모시다]

입향조 박경(朴景)이 마을을 개척한 이후 도진리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나 충을 실천했고, 집 안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를 봉행하였다. 그러한 유업들이 쌓여 도진리는 1997년 7월 13일 경상북도 제1호 충효마을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충효마을로 인정받은 것이다.

1997년 9월에는 ‘고령박씨 소윤공파 문적’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선조들의 충·효와 관련된 문적과 유물을 전시하여 그 뜻을 기리고, 후세들의 충효 교육을 위한 교육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진리에서는 경상북도와 고령군에서 2억 5천만 원[도비 1억 원, 군비 1억 5000만 원]을 지원 받아 2003년 9월 도진충효관 건립 공사를 시작해 2005년 2월에 준공하였다. 또, 도진충효관 주변은 고령군과 주민들의 성금을 모아 마을 공원인 도원공원을 조성하였다.

도진충효관 앞에는 상마석(上馬石)[또는 기마석(騎馬石)]과 표적돌[또는 사적석(射的石)]이 좌우에 놓여 있다. 상마석과 표적돌은 원래 마을 입구 화직간 터 앞에 있던 것을 1995년에 이전하였다.

상마석은 옛날 종가의 힘센 종이 상전이 말을 타기 편하도록 짐 속에 넣어 왔다고 전하는 것이고, 표적돌은 임진왜란 때 의병 훈련을 위해 100m 떨어진 논두렁에서 표적을 붙여 놓고 활을 쏘는 연습을 했던 것이라고 한다. 도진충효관 주변에 조성된 도원공원에는 ‘충효관 건립 및 마을공원 조성비’와 ‘마을공원 도원헌성비’가 세워져 있다.

[도진충효관에 전시된 마을의 보물들]

도진충효관은 2층의 콘크리트 건물인데, 44평[145.45㎡] 정도 되는 1층은 마을회관으로 활용되고, 20여 평[66.12㎡] 정도의 2층은 도진리의 충효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전시관 옆에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설치해 두었다.

전시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도진충효세계도」가 걸려 있다. 도진리의 입향조인 박경[부창정공 박환의 8세손]부터 현대의 박수헌(28세손)에 이르는 충효 인물의 세계도이다. 특히, 충을 실천한 인물은 푸른색, 효를 실천한 인물은 붉은색으로 표기해 두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전시관 내에는 도진마을의 보물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충효관에 전시, 보관된 유물들은 고령박씨[도진박씨] 문중에서 전해 오는 각종 고문서와 문집, 현판과 목판 등이다. 고문서는 각종 재산 상속 문서와 교지들이다. 「박계조처숙인전주유씨허여문기」는 1540년(중종 35)에 작성된 것으로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분재기라고 한다. 전주유씨가 여섯 명의 자녀들에게 전답과 가옥 등의 재산을 상속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시대 상속인의 수결[서명 날인]이 되어 있어 집 안에서 더욱 소중히 여긴다.

「박윤허여문기」는 죽연 박윤이 자녀 3남매에게 노비와 전답 등을 상속한 문서로 1572년(선조 5)경에 작성되었다. 또 「박윤별급문기」는 박윤이 아들인 박정벽(朴廷璧)이 자신의 병을 잘 간호해 준 것을 고맙게 여겨 노비와 토지 등을 특별히 상속한 내용이다. 그 외에도 「박종윤처성씨허여문기」, 「박창선남매화해문기」, 「박서전남매화해문기」, 「숙인성씨허여문기」 등이 있다.

도진충효관에 전시된 교지로는 박광선의 전옥서주부 교지[만력 28년, 1600년], 박효선의 생원급제 교지(만력 29년, 1601년), 박종주의 문과급제 교지[만력 43년, 1615년], 박망지의 충주진관병마절제도위 교지[강희 28년, 1689년], 박경덕의 통정대부 교지[가경 22년, 1817년] 및 절충장군 교지[가경 25년, 1820년] 등이 있다. 그리고 1813년(순조 13)에 작성된 남와 박민국의 호구 단자 등도 전시되어 있다. 이 고문서들은 ‘고령박씨 소윤공파 문적’이란 이름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98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다.

다음으로 도진충효관에는 박정번(朴廷璠)의 『학암집(鶴巖集)』을 비롯해, 박원갑(朴元甲)의 『도원유집(桃源遺集)』, 박응형(朴應衡)의 『남고집(南皐集)』, 박세정(朴世貞)의 『한와와집(閒臥窩集)』, 박경가(朴慶家)의 『학양집(鶴陽集)』 등 도진리 출신 유학자들의 문집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특히 『한와와집』은 문집 목판도 함께 전해 온다. 그 외에도 고령박씨 종안과 절목, 고령박씨 족보, 『고령향안』, 「빈흥재유계 중수안」, 『삼강행실도』 등도 중요하게 전해지는 자료들이다.

특히, 2009년 8월에 발견된 「문연서원 수임안」과 「문연서원 부임안」, 「문연서원 차비안」 등은 문연서원 관련 자료로 주목된다. 「문연서원 수임안」은 1696년(숙종 22) 문연서원을 창건한 이후 1868년(고종 5) 서원이 훼철될 때까지 233년 동안 154명의 원임[서원의 원장]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문연사봉안시준분록」은 1696년 서원에 위패를 봉안하고 제를 지낼 때의 집례자 목록이다. 「문연서원 부임안」은 1786년(정조 10)부터 1868년(고종 5)까지의 부임[서원의 부원장]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문연서원 차비안」은 1729년(영조 5)과 1784년(정조 8)의 서원제 준비를 돕기 위해 고령현감이 지원한 노비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고문서들은 문연서원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그와 더불어 2010년 1월 중순에는 문연서원 터에서 백자 제기 10여 점이 발견되었다. 이것들은 1868년 문연서원 훼철 때 땅 속에 매립됐던 제기들로 보이는데, 수도관 가설 공사로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도진충효관에는 근·현대의 인물들로 3·1만세 운동을 주도한 박기로의 애족훈장, 박경점의 광복훈장, 6·25전쟁 때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운 박수헌의 전선 일지인 『혈적(血跡)』과 을지무공훈장, 영월엄씨 엄상암 씨와 순창설씨 설옥순 씨의 효부 표창장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고령박씨의 대표적인 인물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편지글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한편, 도진충효관에는 도진리의 선조들과 관련한 현판과 시판 들이 다수 보전되어 있다. 학암정과 문연서당 현판은 1600년(선조 33)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시판은 1605년(선조 38), 문연서원 현판과 분정판은 1696년(숙종 22) 서원이 창건될 때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문연서원 중수기’, ‘부래정 현판’ 등이 있다. 이 현판들은 지금은 사라진 정자와 서원에 걸렸던 것으로, 선조들의 유품을 소중히 여기는 도진리 사람들의 역사 계승 의식을 잘 보여 준다.

이처럼 도진충효관에는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진리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령박씨들의 충과 효의 역사를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들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이들 유물은 고령박씨 일문(一門)의 보물에 그치지 않고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다. 특히, 도진충효관은 지역 사회에서 마을 단위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그것을 어떻게 가꾸고 후손들에게 전승할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도진충효관의 건립과 운영 과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제2, 제3의 도진충효관과 같은 전시관이 마을 단위에서 지속적으로 건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보제공]

  • •  박돈헌(1948년생, 우곡면 도진리 주민, 도진충효관 관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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