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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이두훈(李斗勳)이 고령 지역의 강계(疆界)와 연혁(沿革) 등을 엮은 책. 조선시대 편찬된 관찬 읍지로 가장 오래된 것은 임진왜란 이전에 편찬된 『함주지(咸州誌)』다. 이후 숙종 대까지 경상도의 진주, 안동, 경주, 상주 등의 읍지가 나왔다. 영조와 정조 연간에는 32개 지역의 읍지를 묶은 『경상도읍지(慶尚道邑誌)』가 나왔으며, 1832년(순조 32)에 나온 『경상도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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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이두훈이 지은 역사서. 이두훈(李斗勳)[1856~1918]은 본관이 성산이씨로 국포(菊圃) 이문룡(李文龍)의 9세손인 이인한(李寅漢)의 아들이다. 초명은 이중훈(李中勳), 자는 대형(大衡), 호는 홍와(弘窩)이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만년에 내산서당(乃山書堂)을 지어 교육에 힘썼다. 예학에 뛰어나 예설과 관계된 서간문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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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1908년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의연금 모집 기관. 국채 보상 운동은 전 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국권 회복 운동으로 1907년 2월에 대구에서 공식화되었다. 1907년 1월 부산상무소[회두: 서상돈]에서 처음 논의되어 1907년 1월 29일 대구관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대동광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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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3월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유생 이인재(李寅梓) 등이 지방 자치제를 위해 설립한 단체. 민의소는 구한말에 전국 각처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일종의 지방 자치 기구로서 대표적인 예로는 고령군 자치민의소를 비롯하여 1906년 5월에 설립된 대구민의소, 1907년에 설립된 청도민의소, 1908년 12월에 설립된 한성부민회, 1909년 4월에 설립된 의령군민의소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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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고령박씨의 정문. 열녀 고령박씨는 양천인 최흠(崔欽)의 처이다. 결혼한 지 20일 만에 남편이 병사하자 시부모 앞에서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다가 남편의 3년 상을 마친 후에 남편의 허리띠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그의 죽은 모습은 산 사람처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선녀 같은 자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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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전승되어 오고 있는 조선시대 보상(褓商)들의 조직체. 1899년 상무사 설립과 함께 조직되어 활동한 지역의 상인 단체이며 2008년 좌사계와 통합되기 전까지 조선부보상단의 전통을 계승하는 상인 단체 겸 친목 단체로 활동해 왔다. 1899년 상무사의 설립과 함께 지방 장시를 거점으로 활동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고령상무사 우사계의 조직은 1899년 상무사 설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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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조선시대 부상(負商)들의 조직체. 지방에 개설된 장시를 거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병인양요 후 대원군에 의해 유진교(兪鎭敎)를 우두머리로 하여 1866년 조직되었으며 2008년 우사상계와 통합되기 전까지 조선부보상단의 전통을 계승하는 상인 단체 겸 친목 단체로 활동해 왔다.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부상단이 조직된 것은 1866년이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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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답곡마을에 있는 비석. 비면 좌측 상단에서 하단으로 ‘숭정기원후오주갑세경자이월일구대손양거동(崇禎紀元後五周甲歳庚子二月日九代孫梁渠東)’이라 하여 1900년 2월 9세손이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대가야읍 대가야박물관에서 12.4㎞ 떨어져 있는 산주리 속칭 논골마을에서 묘성암을 지나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300m 정도 경사로를 올라가면 길 우측에 자연 암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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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있는, 이경벽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 중화2리 마을 표지석에서 좌회전하여 70여m 떨어진 둔덕마을 초입 좌측의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농헌정는 1902년 합천인 이경벽(李慶壁)이 행한 후진 양성 및 학문 탐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문하생들이 건립하였다. 1965년 한낮에 건물 전부가 붕괴되어 후손과 후학들이 뜻을 모아 그해 중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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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의 계몽 운동 단체였던 대한자강회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지회. 대한자강회는 교육을 통해 국민을 계몽시킴으로써 국권을 회복하고자 했던 구한말의 계몽 운동 단체이다. 국민 교육을 강화하고 국력을 배양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다진다는 취지 아래 1906년 윤효정(尹孝定)·장지연(張志淵)·나수연(羅壽淵)·김상범(金相範)·임병항(林炳恒) 등이 1905년 5월 이준(李儁)이 조직한 헌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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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김종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강학지소. 대가야읍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합천 방향으로 들어오다 보면 안림천 위로 나 있는 귀원교를 지나게 된다. 귀원교를 지나면 우측 편에 여러 한옥 건물로 이루어진 개실마을이 보이는데 북쪽에는 점필재 종택이 위치하며 도연재는 개실마을의 서쪽에 위치한다. 도연재는 1866년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15세손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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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고령 지역에서 전개된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신원(敎祖伸寃)과 외세 배척을 목적으로 전개한 농민 운동이다. 1860년 경주에서 시작한 경상도의 동학은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되었는데, 1874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민씨 정권이 들어서면서 삼남 지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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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성산이씨 문중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대가야읍 본관리 관동마을은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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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에 있는 이도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재실. 사우재는 전주인 이도(李蒤)가 후배 양성을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이도의 유적비는 지금의 새마을공장[연방직물] 안에 있으며, 이도의 친필서 2권과 문집 5권이 보관되어 있다. 사우는 네 벗, 즉 노중련, 도연맹, 호방형, 이벽결을 뜻한다. 국도 33호선을 따라 합천·거창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안림삼거리에서 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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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교육을 통해 국권을 수호하고 근대 민족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 개항기 고령 지역에서는 관과 유림을 중심으로 교육기관 설립 등 각종 교육 및 문화 사업이 펼쳐져 실력 양성론에 입각한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대한자강회, 대한협회, 신민회 등의 단체 설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06년 군수 윤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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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국서(國瑞), 호는 국포(菊圃). 오운(吳澐)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오연순(吳演淳)이며, 맏아들로 태어났다. 오상옥(吳相玉)[1847~1910]은 밖으로는 능숙한 문장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안으로는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병들어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자, 인분을 약으로 먹이라고 하였다. 이에 인분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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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부상단(負商團) 반수(班首). 유의순(兪義淳)[1824~1885]의 초명은 도인(道仁)이며, 홍순(弘淳)으로도 불렸다. 고령 지역의 토성(土姓)인 기계유씨(杞溪兪氏) 주부공파(主簿公派) 후손이다. 유의순은 고령 관아의 아전(衙前)으로 일하다가 1874년부터 1883년까지 10년간 고령 일대의 오일장을 장악한 지역 부상단의 반수를 맡아 하였다. 행상 조직이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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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고령 지역에서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조선 왕조의 모순이 드러나는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농민층의 봉기가 빈발하였다. 당시 농민 봉기는 지방관의 학정(虐政)과 지방 사족층의 횡포, 외세의 정치 경제적 침략에 따른 위기의식의 고조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났다. 특히 삼정(三政)의 문란은 경제적으로 농민들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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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계몽운동가. 이두훈(李斗勳)[1856~1918]은 고려 왕조 이후 고령에서 세거한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의 후예로, 초명은 중훈(中勳)이고 자는 대형(大衡)이며 호는 홍와(弘窩)이다. 한평생 학문과 예법을 숭상하며 제자 양성에 힘썼다. 이두훈의 집안은 세종 대의 이사징을 비롯하여 이동례(李東禮), 이현룡(李見龍), 이문룡 등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특히 9대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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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고령 지역에서 군수 및 세무관의 불법 징세에 반발하여 일어난 반봉건 농민 항쟁. 고령군수 윤하영[재직 기간 1906년 5월~1907년 4월]의 불법 징세를 시정하도록 요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윤하영의 불법 징세에 반발한 신영환(辛泳桓)과 박경순(朴敬淳) 등이 1907년 음력 2월 22일 군민들과 함께 군청으로 몰려갔다. 1906년 고령군수 심택진(沈宅鎭)이 향리들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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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고령 출신의 학자. 조상(曺塽)[1876~1945]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문보(文甫), 호는 봉강(鳳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규승(曺奎承)이며, 증조할머니는 오원(吳瑗)의 딸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해주오씨는 효부(孝婦)로 정려(旌閭)를 받고, 복호(復戶)의 혜택을 입었다. 또한 『성주지(星州誌)』에 효행이 수록되었으며, 후산(厚山) 이도복(李道復)[1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