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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30호분 뚜껑돌 바위그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629
한자 池山洞三十號墳-
영어의미역 Petroglyph on a Dolmen of Jisan-dong Ancient Tomb No. 30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465-1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바위그림
건립시기/연도 청동기시대
높이 11㎝[주석실 뚜껑돌 바위그림]|78㎝[하부석곽 뚜껑돌 바위그림]
깊이(폭) 120㎝[주석실 뚜껑돌 바위그림]|150㎝[하부석곽 뚜껑돌 바위그림]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465-1 지도보기
소유자 고령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대가야박물관에 있는 청동기시대 바위그림.

[개설]

지산동 30호분 뚜껑돌 바위그림은 1994~1995년 사이에 대가야왕릉전시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지산동 30호분의 뚜껑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주석실 뚜껑돌의 측면에서는 신면형 바위그림이, 주석실 바닥 아래 하부 석곽 뚜껑돌의 윗면에서는 성혈과 선각을 조합한 독특한 형태의 인물상 바위그림이 발견되었다.

[위치]

현재 고령군 대가야박물관 2층 상설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형태]

주석실 뚜껑돌 바위그림의 경우, 주석실 뚜껑돌의 크기는 두께 11㎝, 폭 120㎝ 정도이다. 암각의 기본 형태는 위쪽이 넓고 아래가 좁은 신면형으로, 장기리안화리의 것과 비슷하다. 완전한 모양이 아니라 상하의 일부가 잘려나가 전체의 3/4 정도만 형태가 남아 있다.

잔존하는 암각의 크기는 깃털을 제외하고 높이 11㎝, 폭 10㎝ 정도이며, 선의 폭은 1㎝ 내외이다. 깃털은 왼쪽에 4가닥, 오른쪽에 5가닥 남아 있으며, 길이 6㎝, 폭 1㎝ 내외이다. 깃털을 자세히 살펴보면, 8~10개 내외의 구멍을 쪼아 판 다음 여러 차례 문질러서 선을 완성한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형태는 위쪽과 아래쪽의 모양은 알 수 없으며, 양쪽 면을 서로 대칭되게 활모양으로 만곡하게 선을 그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신면형의 내부에는 가운데에 가로 분활선을 그어놓고, 내부에는 상부에 두 개의 성혈을 새긴 것이 확인된다. 지산동 30호분 뚜껑돌 바위그림은 주로 쪼기 수법으로 새겨졌으며, 주변에서 다수의 쪼아 판 흔적이 더 발견되고 있으나, 정연한 형태를 이룬 것은 아니다.

하부석곽 뚜껑돌 바위그림의 경우, 주실 바닥 아래에 있는 하부 석곽 뚜껑돌에 새겨진 바위그림은 주로 쪼기와 갈기 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암각이 새겨진 바위면의 크기는 높이 78㎝, 폭 150㎝ 정도이다. 암각은 크게 성혈과 선각을 조합한 독특한 형상이 중심이 되고, 그 외에 다수의 성혈이 관찰된다.

제출된 보고서에서는 중심이 되는 암각을 인물상으로 보았고, 각각 남성과 여성의 정면관과 측면관으로 이루어졌으며, 성기를 극히 강조하여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추상적으로 처리된 남녀의 성애 장면, 바위 구멍, 새발자국형 무늬가 함께 새겨져 있고, 줄로 꾄 듯 선으로 서로 연결한 바위 구멍과 독립된 구멍들을 새겼고, 그림 사이의 빈 공간에 무수히 쪼아넣은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적 표현이 중심인 점에서 생산을 기원한 것이 틀림없으나, 영혼의 안내자로 상징되는 새의 발자국과 크고 작은 별들로 가득 찬 명천(冥天)의 공간에 띄운 성적 표현은 강한 재생신앙의 내세관을 엿보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지산동 30호분 뚜껑돌 바위그림는 고분 축조 당시 매장 의례와 관련하여 새긴 것이 아니라 주석실의 뚜껑돌 석재를 구하는 과정에서 바위그림이 새겨진 바위 면을 채석한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지산동 30호분의 석실 및 석곽 뚜껑돌에 새겨진 이 바위그림은 청동기시대의 것이 그보다 훨씬 후대에 조성된 대가야시대 무덤의 발굴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대가야시대의 고분 축조 과정에서 바위그림이 새겨져 있던 돌을 채석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기왕에 확인된 장기리안화리 이외의 지역에서도 바위그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신면형과 인물상 바위그림이 새겨진 바위의 재질은 사질성이 강한 화강암으로 서로 비슷하여, 채석되기 전 같은 장소나 인접한 지역에 입지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이 바위그림을 채석해서 왕릉의 덮게 돌로 이용한 점은 신앙 체계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이 바위그림을 통해 대가야시대 사람들은 이전 시기의 바위그림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했던 점만은 분명하다. 지산동 30호분 뚜껑돌 바위그림의 발견은 바위그림 연구는 물론 가야시대 사람들의 바위그림에 대한 인식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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