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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03
한자 耽羅誌草本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문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 이원조(李源祚),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읍지인 『탐라지초본』저술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 제주교육박물관, 『탐라지초본』 번역본 상권 발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8년 - 제주교육박물관, 『탐라지초본』 번역본 하권 발간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
성격 읍지
저자 이원조
번역자 제주교육박물관
간행자 제주교육박물관

[정의]

1841년(헌종 7) 제주목사이던 이원조가 초고(草稿)한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지.

[개설]

이원조(李源祚)[1792~1872]는 호는 응와(凝窩)이며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사간원정언을 지냈으며 1841년(헌종 7) 강릉부사로 있던 중 구재룡(具載龍)의 후임으로 제주목사에 부임하여 1843년(헌종 9) 6월까지 재임하였다.

이원조는 제주목사 재임시 『탐라록(耽羅錄)』·『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탐영관보록(耽營關報錄)』·『탐라계록(耽營啓錄)』 등의 제주도 관련 책을 저술하였다.

『탐라지초본』이원조가 제주목사로 있을 때, 공가(公家)의 계본과 첩문, 관청 건물의 편액과 기문을 수집하여 손질하고 한데 모아 만든 사찬(私撰) 읍지이다.

[편찬/간행 경위]

이원조는 이전 읍지의 소략(疏略)함을 보완하기 위해서 『탐라지초본』을 편찬하였다. 이원조는 그의 또 다른 저작인 『탐라록』에 발문을 썼는데 “읍지가 있는 이유는 세간의 풍속을 기록하고 예전에 있었던 사실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차라리 번거로울지언정 간추리지는 않으며, 차라리 예전대로 둘지언정 삭제하지는 않는 것이 정사(正史)의 간결하고 엄정함과 다르다…(중략)…예전의 읍지를 읽는 자가 항상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번거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간추린 데에 있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형태]

필사본으로 크기는 가로 30.2㎝, 세로 18.2㎝이다.

[서지적 상황]

『탐라지초본』은 다른 자료들과 함께 성주 성산 이씨 ‘응와종택’에서 2001년 국립제주박물관이 개관할 때 대여했다가 2011년 대여 기간이 끝나자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여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다.

제주교육박물관은 2007년과 2008년에 『탐라지초본』을 상·하권으로 나누어 번역본을 발간하였다.

[구성/내용]

『탐라지초본』은 기존의 읍지와 달리 네 가지 편목(編木)을 추가하였는데, 기문(奇聞)·구례(舊例)·변정(邊情)·은전(恩典)과 구휼(救恤)이다.

서귀포 지역에 관한 내용은 권4의 정의현·대정현 조에 실려 있다. 두 현에 대한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산천(山川)·도서(島嶼)[포구를 덧붙임]·물산(物産)·토속(土俗)과 씨족(氏族)·방리(坊里)·호구(戶口)·도로(道路)[원과 참을 덧붙임]·교량(橋梁)·성지(城池)·단묘(壇廟)·학교(學校)·공해(公廨)·누관(樓觀)·진보(鎭堡)·봉수(烽燧)[연대를 덧붙임]·목양(牧養)·과원(果園)·공헌(貢獻)[각(各) 사(司)에 납부하는 것을 덧붙임]·전결(田結)·대동(大同)·봉름(俸廩)·요역(徭役)·조적(糶糴)·창고(倉庫)·군액(軍額)·노비(奴婢)·인물(人物)·과환(科宦)·형승(形勝)·고적(古蹟)·관안(官案)이다. 이를 제주목과 비교해 보면 공장(工匠)과 제영(題詠)이 빠져 있고, 대정현정의현과 달리 누관(樓觀)이 빠져 있다.

권3의 기문(奇聞)에는 헌마공 김만일(金萬鎰)에 대한 이야기, 이형상 목사가 불태운 광정당(廣靜堂), 바다 거북[玳瑁]을 놓아 주어 평생 천연두를 앓지 않은 모슬리(摹瑟里)의 잠녀이야기, 한모살개[大沙浦, 표선해수욕장 일대]의 굴이야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중반의 제주목과 정의현·대정현의 물산과 토속·봉수·호구·고적·씨족 등을 자세히 기록해 160년 전 선조들의 생활풍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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