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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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靜縣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임승희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418년 - 대정현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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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795년 - 대정현성 동문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27년 - 대정현성 동문, 서문 재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55년 - 대정현성 북성 위 망미정 건립 |
현 소재지 | 대정현성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인성·보성리 일대 |
성격 | 성곽 |
크기(높이) | 17척 4촌[5.272m] |
둘레 | 4,890척[1,481.67m]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인성·보성리 일대에 있는 성곽.
[개설]
대정현성은 대정현이 설치된 2년 후에야 축조되었다. 즉, 1418년(태종 18) 대정현감 유신(兪信)에 의해 1개월만에 완성되었다. 대정현성은 제주읍성이나 정의현성과는 달리, 당시에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후에 폐쇄되었다. 문 위에는 모두 초루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선조 때에 옹성(擁城)과 포대(砲臺)를 더 쌓았다.
성 안에는 연못과 우물이 1개씩 있었으나, 물이 풍부하지 않아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현감의 탐욕과 청렴함에 빗대어 ‘현감이 탐욕하면 물이 마르고, 청렴하면 물이 잘 나온다’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대정현성을 물이 풍부한 현 안덕면 감산리나 사계리 단산 밑으로 이설하는 문제가 논의되기도 하였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1653년에 편찬된 이원진의『탐라지』기록에 따르면 대정현에 소속된 병력은 파총 1명, 성장 2명, 초관 7명, 기패관 2명, 군관 72명, 기병 204명, 보병 101명, 수군 375명, 차비군 111명, 속오군 555명, 서기 7명, 사명 40명으로 구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치]
대정현성은 서귀포시 대정읍 동성리[지금의 안성·인성리]와 서성리[지금의 보성리] 일대에 있었다. 단산 북쪽과 모슬봉 동쪽에 있는 평지[지금의 대정읍 안성, 인성, 보성리] 구간에 방형(方形)의 모양으로 축성되었다.
[형태]
대정현성은 둘레가 4,890척[1,481.67m]이고 높이는 17척 4촌[5.272m]이며 타첩(垜堞)은 155개소, 여첩은 시기에 따라 155~240개가 있었다. 동서남북에 각각 대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후에 폐쇄되었고 문 위에는 문루가 있었고 성내에는 둘레가 22장, 깊이 4척이 되는 연못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남문에는 둘레 4장, 깊이 8척이 되는 우물이 있었다.
이후 1795년(정조 19)에 현감 고한조가 동문을 중수한 것을 비롯하여 1827년(순조 27)에 현감 박상률이 동문과 서문을 재건하였고, 1855년(철종 6)에 현감 신성흠이 북성위에 망미정을 건립하였다. 또한 현감 이관에 의해서 해안루라는 남문루가 중건되기도 하였다.
관아건물로는 객사인 영안관(瀛安館), 현감의 집무처인 아사(衙舍), 향사당 및 작청 외로 정의현과 유사한 관청들이 위치해 있었다. 아사는 치롱재(痴聾齋)라 부르다가 순조 25년(1825)에 윤경당(潤經堂)으로 개칭되었고, 1906년에는 군수 남만리에 의해 절애(節愛)라 이름하였다. 이렇듯 성내에 세워졌던 관아는 동헌인 영안관, 윤경당, 청풍당, 향사당, 관청, 장교청, 진리청, 작리청, 현사 등 현을 다스리는 관아와 그 부속 건물로 구성이 되었다.
[현황]
대정현성은 조선 태종 16년 제주도의 행정 구역 정비로 대정현이 설치되고, 2년 뒤에 대정현감 유신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이래 1915년 군제가 폐지되고 도제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대정현의 행정 중심이었으나, 이후 4.3 사건을 거치면서 훼손되었다.
대정현성의 성벽 둘레는 약 1614m이고, 높이는 약 5.1m이었으며, 1858년까지 성내에는 관아건물 18동이 있었을 만큼 규모가 컸다고 전해진다. 현재 대정현성은 대부분 원형대로 남아 있고, 특히 북측 성벽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파손된 성곽 일부도 대부분 복원되었다. 북측 성벽의 외벽 높이는 2.8~3.8m이며, 폭은 2.7~3.1m로 현무암을 장방형과 정방형으로 다듬이질하고 가로쌓기와 모쌓기를 하여 축조하였다.
또한 현재 성내에는 사적 487호 추사유배지를 비롯해 제주도 민속자료 제2호 돌하르방 12기, 제주 전통 옹기를 재현하는 가마터 등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대정현성은 지난 1971년 8월 26일 제주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정현성 의 복원은 제주 지역 문화 관광 자원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문화유적지와 연계한 관광코스는 성읍민속마을[정의현성의 읍치]과 더불어 제주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