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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소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599
한자 十所場
이칭/별칭 국마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강만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1429년연표보기 - 고득종(高得宗)이 세종에게 국영목장인 십소장(十所場) 설치 건의
관할 지역 십소장 - 제주도 서귀포시
관할 지역 십소장 - 제주도 제주시
성격 목마장|목장
관련인물 고득종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 지역에 1430년부터 세종의 지시로 세워진 10개의 국영 목마장.

[개설]

십소장은 1430년대부터 지역주민들을 동원한 축성 정책과 목마장 예정지 내의 기존 거주민들을 장외로 옮기는 이주정책, 그리고 국가소유인 국마와 주민소유의 사마를 공동으로 방목시키는 정책을 통해 형성되었다. 당시 목장규모는 1개 목장의 주위가 45리~60리였으며, 제주목사가 3읍 감목관을 겸직하면서 제주도 전 국영 목장지대의 마정을 통솔하였다. 각 소장의 최고 책임자인 마감과 군두·군부·목자에 의해 철저하게 목장이 운영되었다.

대체로 제주목 중산간 지역에는 1소장부터 6소장까지, 대정현 중산간 지대에는 7·8소장 그리고 정의현 지역에는 9·10소장이 위치했다. 십소장에서 생산, 관리되는 가축 중 품질이 우수한 우마들은 해마다 주기적으로 공마로 선정되어 조정에 진상되었다. 현재 서귀포시 지역의 경우, 7소장은 안덕면 중산간 지역, 8소장은 옛 중문면 중산간 지역 그리고 정의현의 9소장은 옛 서귀읍 중산간과 남원읍 중산간 지역, 10소장은 표선면 성읍리 지역에 설치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시대 제주도 십소장은 방목하던 말들이 농작물에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해안지역에서 목초 부족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중산간 지역을 목장지역으로 지정한 다음 안정적으로 목축지를 확보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429년 제주도 출신 상호군 고득종(高得宗)세종에게 한라산 중산간 지대에 목장을 만들자는 건의를 함으로써 십소장이 탄생했다.

십소장의 존재를 입증하는 고지도로는 「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18세기 중엽], 「제주삼읍도총지도(濟州三邑都摠地圖)」[1770년대], 그리고 문헌기록으로는 이형상(李衡祥)『남환박물(南宦博物)』[1703년], 이원진(李元鎭)『탐라지(耽羅志)』[1653], 이원조(李源祚)『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19세기], 『조선왕조실록』·『비변사등록』 등이 있다.

[변천]

한라산 목장인 대규모 십소장 내에는 천자문의 글자로 낙인하여 군(群)으로 편성한 후 만든 소규모 자목장(字牧場)이 소장별로 분포하였다. 17세기 중반에 중산간 지역에는 11개 소장에 58개 자목장이, 그리고 18세기로 들어오면서 자목장이 5~6개 증설되어 이형상『남환박물』에 의하면 63개로 자목장이 증가했다. 1704년에는 방만한 목장운영에 따른 부실화로 인해 중산간 지역의 목장에 대한 재정비 정책이 실시되었는데, 관리가 부실하여 마필 사육이 불량한 자목장은 버리고, 규모가 작은 자목장은 큰 자목장으로 통합하는 재정비 정책에 따라 자목장들이 십소장으로 통폐합되어 중산간 목장운영의 효율을 기하였다.

영조·정조대의 가뭄과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으로 목장지에 대한 개간욕구가 분출하면서 1794년부터 목장내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세금으로 곡식을 징수하여 목자들의 급료로 지급했다. 1800년대 중반에 들어와 십소장 내에서도 목장토 개간과 화전(火田)이 점차 묵인되면서 목축공간이 점차 축소되기 시작했다. 1800년대 후반부터 십소장 지역도 점차 폐장(廢場)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공마제도(貢馬制度)와 점마제도(點馬制度)가 폐지되면서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말기 국영목장 관리 부서였던 사복시(司僕寺) 자체가 목마장 운영을 방기한 채 재정확충을 위해 둔전(屯田) 확보에 혈안이 되면서 사복시 소속 목마장은 수세지(收稅地)인 ‘둔전지소(屯田之所)’로 변모하고 말았다.

1860년대 제주 지역은 민호(民戶)가 증가하면서 토지가 부족하게 되자 하잣성 아랫마을 주민들이 목장 내로 들어가 몰래 개간하는 사례가 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국마장을 유지시켰던 감목관제[지방의 목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육품의 무관 벼슬 제도]·공마제도·점마제도가 폐지되었고, 1897년 공마 대신 금전납(金錢納)으로 대체되면서 국마장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십소장이 해체된 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 마을 공동목장으로 재편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십소장은 조선 시대 제주도 중산간 지대에 설치된 국영 목마장이었다. 여기서 생산, 사육된 우마들은 주기적으로 조정에 진상되어 국가의 외교·국방·농축산 문제해결에 기여했다. 제주도의 목장운영 방식은 전국 목장운영의 근간이 되었으며 제주도산 말들은 전국에 공급되어 제주도는 명마산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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