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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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龜河善政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72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백종진 |
현 소재지 | 동치못 - 수산1리 수산-성읍 간 도로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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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금석문 |
관련 인물 | 황구하 |
재질 | 조면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75㎝, 너비 30㎝, 두께 6㎝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어사 황구하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
[개설]
황구하 선정비(黃龜河 善政碑)는 조선시대 1716년(숙종 42)에 제주도에 입도하여 제주의 기민을 구휼한 어사 황구하의 선정을 칭송하여 1724년(경종 4)에 세운 비석이다. 전면에 음각된 문장 외에 따로 명문(銘文)을 새겨 놓지 않았다.
[건립 경위]
1713년(숙종 39)과 1715년 흉년으로 제주 삼읍에 굶어 죽는 자가 많았다. 이에 중앙에서 1716년에 황구하를 별견어사로 임명하여 제주로 파견했다. 황구하는 1년 여간 제주에 머물면서 진휼에 힘쓰는 한편, 제주 삼읍 백성을 위해 공물의 2/3를 감하도록 하고, 환자곡(還子穀)[환상곡]도 절반만 갚도록 했다. 이에 대한 고마움을 비에 새겨 넣은 것이다.
[형태]
비는 수산1리 수산-성읍 간 도로변 속칭 ‘동치못’에 소재하며, 높이 75㎝, 너비 30㎝, 두께 6㎝이며, 재질은 제주에서 나는 조면암으로 되어있다.
[금석문]
전면에 다음과 같이 세로로 음각되어 있다.
別遣御使黃公龜河至誠賑民碑(별견어사 황공구하 지성 진민비)
擁正二年 甲辰 閏四月 日 建(옹정2년(1724) 갑진 윤4월 일 세움)
[현황]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마모도 심하지 않아 육안으로도 판독이 가능하다. 본래 수산1리 722번지 감귤작목반 창고 뒤편의 속칭 ‘냇팥’ 대숲에 세워져 있었는데 2007년경에 수산1리 수산-성읍 간 도로변 속칭 ‘동치못’으로 목사 윤구동 선정비와 함께 옮겨 세워졌다.
[의의와 평가]
척박한 화산토로 되어있는 제주는 본토와 달리 잦은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숙종 42년(1716)에 중앙에서 파견된 별견어사 황구하가 제주 백성들에게 진휼했음을 알려주는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