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7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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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阜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정의]
문헌공(文獻公) 이경조(李敬祖)를 시조로 하고 이세번(李世蕃)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연원]
고부이씨의 시조는 고려 문종 때 한림학사를 거쳐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문헌공 이경조이다. 고부를 본관으로 사용한 연유는 시조의 고향이 전라북도 고부이며, 말년에 고부 거석동(巨石洞)에 은거하며 후진을 양성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고부이씨의 세계는 문헌공 16세손에서 크게 번성하여 9파로 갈라지고 다시 아래로 21개파로 분파를 형성하게 된다. 제주도의 고부이씨는 벽동공파(碧潼公派) 파조(派祖) 이정(李精)의 후손들이다. 제주 입도조는 이세번으로, 시조 이경조의 19세손이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윤승(李允升)의 6세손이며,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 이삭(李朔)의 증손임과 동시에 벽동공파 파조 이정의 차자이다.
[입향 경위]
제주 입도조 이세번은 1514년(중종 8) 알성시(謁聖試)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吏曹佐郞)과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을 거쳐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다. 1519년(중종 14) 위훈(僞勳) 삭제사건을 계기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어진 선비들이 화를 입자 앞장서 무죄함을 탄원하다가 조광조 일당으로 몰려 1520년 제주 대정현에 유배되었다. 제주에 입향한 이세번은 적거지 대정현에서 흥학교화(興學敎化)에 힘쓰다 7년째인 1526년(중종 21) 대정의 배소(配所)에서 별세하였다.
다른 입도조인 이세택(李世澤)은 시조 이경조의 23세손, 중시조 이회(李晦)의 7세손이다. 1520년(중종 15)에 합랄지란(哈喇之亂)을 진압하기 위해 원병장으로 입도하였다. 이 후손들은 대부분 한라산 북쪽 제주시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하였기에 산북파라고도 한다.
[현황]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고부 이씨는 제주도에 2,379가구 총 7,577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서귀포 대정·중문·도순을 중심으로 약 1,410가구가 되는 것으로 추산되며, 총 인구는 4,204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