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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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延州玄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만익 |
본관 | 연주 - 평안북도 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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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연주 허씨 입향지 - 제주목 화북지경 거로 |
세거|집성지 | 연주 허씨 집성지 - 산북 제주시|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 |
성씨 시조 | 현담윤(玄覃胤) |
입향 시조 | 현사경(玄思敬) |
[정의]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하고 현사경(玄思敬) 등을 입도조(入島祖)로 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세거하는 성씨.
[개설]
현씨는 본향인 북한 지방의 평안북도 지방에 많이 살고 있어 남한에서는 비교적 귀성(貴姓)에 속한다. 2000년 11월 현재 제주도에 3,663가구, 11,863명이 분포하고 있어 지역적으로 집중된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씨의 본관은 창원·성주 등이 전하나 모두 고려 명종조의 장군 현담윤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연주현씨를 대종으로 하는 분적 종이다.
[연원]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영변(寧邊) 대도호부는 연산(延山)이라 하여 고구려 안삭(安朔)군이며, 광종 21년 연주(延州)로, 공민왕 15년에 연산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태종 13년 영변도호부로 고쳤다. 입진(入鎭) 성씨는 현(玄)·이(李)·골(骨)·박(朴)·양(梁)·최(崔)씨 등 여섯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현씨의 관향인 연주는 평안북도 영변(寧邊)의 옛 지명이다. 현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의 장군이며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의 높은 벼슬에 올라 고려 명신록에 등장하는 현담윤이다. 연주로 관향을 정한 것은 출생지명을 따른 것이다.
[입향 경위]
현사경(玄思敬)이 제주로 입도한 배경과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 초 돈녕부 도정(都正)을 지내고 제주 목사로 부임했다가 태종[1403~1419] 대에 제주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목사공 현사경은 시조 현담윤의 9세손이고, 병부 상서 현덕수(玄德秀)의 8세손이다. 또 다른 제주 입도조인 현우성(玄禹成)은 시조 현담윤(玄覃胤)의 17세손으로 경기에 살던 경기판서 현용(玄龍)의 손(孫)이다. 1680년(숙종 6) 무렵 명월 만호로 제주에 왔다가 함덕리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함덕파(咸德派)로 불린다.
제주에 낙향한 입향조 현사경은 3형제를 두었는데, 이 3형제는 거로파·신산파·양이막파로 갈리고, 다시 후에 입도한 현우성의 후손들로 함덕파 등 4파로 크게 나눠져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낙향조의 장남 현수인은 수의교위부사정을 지냈고 그의 후손들을 장파 혹은 수인공파라고 한다. 처음 제주목 동문 밖 화북지경 거로(巨老)에 거주했기에 거로파라 불린다. 낙향조의 둘째 아들 현부인은 어모장군을 지냈고 그 후예들을 부인공파라고도 한다. 이 파조는 6세손 현걸공의 묘소가 남원읍 수망리 지경 신산모루에 있다 하여 그 후손들을 신산파라 부른다. 어모장군을 지낸 입향조 셋째 아들 현귀인의 후예들을 귀인공파라 한다. 이 귀인공파의 8세손 현중공의 묘소가 옛 정의현 남산 양의막에 있었다 하여 그 후손들을 양의막파라 부른다.
[현황]
제주에 낙향한 입향조 현사경은 3형제를 두었는데, 오늘날 제주의 연주현씨는 그 3형제로 말미암아 산북 제주시, 서귀포시 호근동·서호동·법환동·서홍동과 남원읍 남원리, 그리고 서귀포시 성산읍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널리 살고 있다. 제주도 내 현씨 4파는 연주현씨 제주도친족회를 조직해 입도 시조의 시제 봉행, 족보 발간, 회지 『연주』지 발행 등을 통해 선양 계승시켜 나가고 있다.
2000년 11월 제주도 전체 성씨 중 11위를 차지하며 3,663가구에 11,863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귀포시 지역에는 1,871가구에 5,711명이 살고 있다. 입도조 현사경의 묘소가 조천읍 함덕리에 있어 해마다 후손들이 4월 첫 일요일에 시제를 봉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