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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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承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찬식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 오승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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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7년 12월 - 오승언 무극대도교 사건으로 구속 수감됨 |
몰년 시기/일시 | 1946년 - 오승언 사망 |
출생지 | 오승언 출생지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1889번지 |
성격 | 항일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무극대도교 활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서귀포에서 활동한 무극대도교 항일운동가.
[개설]
무극대도교는 1927년 4월 창시된 천도교 계통의 신흥종교로서 평양에 본부를 두어 외세 및 서교 배척을 교의로 한 민족종교였다. 제주에는 한의원을 경영하던 강승태에 의해 전교되었는데, 그는 안덕면 동광리에 포교본부를 두고 제주도의 교주라고 자처하였다. 또한 정도령이 나타나 조선을 독립시킨 다음 전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무극대도의 신도들은 성인의 반열에 올라 영원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그의 주장을 듣고 모여든 신자가 1천여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에 조선의 독립을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있는데다 교세가 날로 늘자 1937년 12월 제주경찰서의 다니모도[谷本] 고등계 주임은 무극대도교 교주 및 교도를 「치안유지법」과 「총포수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일제히 검거하였다. 10개월에 걸친 심문 끝에 일제 당국은 이들을 혹세무민하는 사교(邪敎)로 매도하여 교주 강승태 이하 67명을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하였는데 그 중에서 23명은 구속하고 44명은 불구속하였다.
[활동 사항]
본관은 군위. 1887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1889번지에서 오동현의 아들로 태어난
오승언(吳承彦)은 어릴 때 한문을 수학한 후 1917년경 민족종교인 보천교를 믿었다. 1936년 5월 강승태의 권유로 무극대도교를 믿게 되었다.
오승언은 1940년 12월 4일 무극대도교 사건으로 광주지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