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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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歸浦七十里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승희 |
[정의]
1937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를 배경으로 작사·작곡되어 발표된 대중가요.
[개설]
「서귀포 칠십리」는 조명암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하여, 당시 유명가수였던 장세정이 처음 노래를 부르기로 했으나, 함께 있던 가수 남인수의 요청에 의해 남인수가 부른 대중가요이다.
「서귀포 칠십리」는 1934년 6월에 O.K레코드사의 이철 사장과 함께 제주를 다녀간 조명암이 작사를 했으며, 1937년에 발표되었다. 「서귀포 칠십리」는 당시 일제 강점기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서귀포를 전국에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1930년대 후반만 해도 한낱 보잘것 없는 촌락에 불과했던 서귀포를 널리 알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서귀포 칠십리」 노랫말 때문이었다. 이는 일제 치하에 억눌려 살던 국민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이끌어내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덩달아 서귀포라는 지역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성]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금 비늘이 반짝반짝 물에 뜨는 서귀포
미역 따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금조개도 그리워라 물 파래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별도 외롭네
진주알이 아롱아롱 꿈을 꾸는 서귀포
전복 따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물새들도 그리워라 자개돌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리에 물안개 곱네
[내용]
「서귀포 칠십리」를 부른 남인수의 미성과 가창력은 당시 격동기인 1940년대를 풍미하고, 금지곡·개사곡·해금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노랫말이 더욱 서정적으로 되었다.
가사 내용처럼 당시 조명암이 본 서귀포구의 경우 천혜의 자연 포구였고 동쪽으로는 정방폭포 서남머리 단애에서 서쪽으로는 남성동 절벽과 외돌개 기암에 이르기까지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앞의 범섬·새섬·문섬·섭섬이 미려하게 자리 잡은 사이로 통통배와 고깃배가 오고 가고,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까지 가미된 해안 풍광이 노랫말에 자연스레 묻어난다.
[의의와 평가]
지난 1993년 금지가요 해금조치에 의해 「서귀포 칠십리」는 당시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 중이던 이성애가 일본어로 취입하여 오사카 등지에서 부르게 되었다. 이에 당시 나이 많은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에게는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는 최고의 노래로 자리 잡기도 하였다.
서귀포시는 서귀포의 대표적 가요인 「서귀포 칠십리」와 작사가 조명암을 기리기 위해 1997년 외돌개 해안 동쪽 구릉에 조각가 이영학이 제작한 무쇠 노래비를 세웠다. 그러나 지난 2003년 9월에 불어 닥친 태풍 매미로 인해 노래비가 부서졌기 때문에 오는 2004년 8월 천지연폭포 북쪽 절벽 위에 조각가 김혜숙의 작품으로 화강암 노래비를 세웠다. 버튼식 음향장치를 설치하여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이 「서귀포 칠십리」와 같은 서귀포를 소재로 한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