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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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桃源里姜訓長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집필자 | 현승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지관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도원리 강훈장」은 비록 가족이 죽어도 지관은 사제자로 대접받아야 명당을 선정할 수 있으며, 그 명당은 받아들일 운명의 소유자라야 명당의 기를 받을 수 있다는 풍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1년 7월 16일 대정읍 덕수리 송경은[남, 70세]에게서 채집되어 『한국구비문학대계』9-3에 「도원리 강훈장」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도원리의 강훈장은 대정 출신인데 정시[지관] 일을 잘 했다. 제주시에 가서 훈학을 하는 사이 부인이 죽었다. 모두가 남편이 정시이므로 묫자리를 잘 구하겠지 하고 맡겨두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강훈장은 다른 지관처럼 융숭히 대접하라며, 묫자리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훈장의 부모는 할 수 없이 남처럼 닭을 잡아 대접하고 묫자리를 청했다. 강훈장은 먼저 제주와 대정 중간 지역인 원 근처에 가서 묫자리를 잡으니 부친이 맘에 안 들어 했다. 이번에는 동광 지경의 왼물오름 기슭을 정하니 역시 부친이 맘에 안 들어 했다. 세 번째로 강남오름 기슭을 정하니 좋다고 하여 그 곳에 장사지냈다.
강훈장은 부인을 장사지내고 초우제를 지내고 난 후, 부모에게 삼대 정승이 날 곳, 당대에 문장이 날 곳을 정해주어도 싫다고 하니 자신은 명당을 팔아먹으러 가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는 신촌 근처로 와서 채구석 집안에 장사가 난 것을 보고 찾아가서 소를 한 마리 잡아 달라 하여 먹고, 그 댓가로 묫자리를 잡아 주었다. 그 덕으로 진사를 하던 채구석이 대정의 원(員)을 하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강훈장은 지관으로 부인이 죽자 명당에 묘를 쓰려고 했지만 부친이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다. 강훈장은 그 가치를 인정하는 채구석네 집안에 명당 자리를 넘겨주었다. 지관은 가족이라도 지관으로 대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사제자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