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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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在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855년 - 이재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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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이재교 사립 개성학교 설립, 학교장에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12년 - 이재교 대정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 위촉됨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 이재교 사망 |
출생지 | 이재교 출생지 - 대정현 좌면 중문리 |
활동지 | 사립 개성(開成)학교 - 대정현 좌면 중문리 1699번지 |
묘소 | 이재교 묘소 - 서구포시 중문면 하원리 777번지 |
성격 | 한학자|교육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정향교 도훈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출신의 한학자·교육자.
[가계]
이재교(李在喬)는 1855년 대정현 좌면 중문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고부(古阜)이고, 아버지는 이영송(李榮松), 어머니는 군위 오씨이며, 창경원 동물원장을 지냈던 이달빈(李達彬)이 조카이다.
[활동 사항]
이재교는 교육 항일을 제창하고 신식학교를 세우는 데 앞장섰는데, 제주 군수였던 윤원구(尹元求)가 1907년에 제주공립보통학교와 사립 의신(義信)학교를 세우자 자극을 받아 1909년 초등 4년 과정의 사립 개성(開成)학교를 서귀포시 중문리 1699번지의 못동산에 개설하고, 학교장에 취임, 이기항(李基恒)을 교사로 초빙하여 운영하였다. 그러나 서당교육이 뿌리깊이 자리잡은 당시 제주의 사정과, 지역 인사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신식교육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결국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대정향교의 전교, 도훈장으로 있으면서 창씨개명을 극력 반대하였고, 대정보통학교를 위해 대정향교 소유 송림 20여만 평을 연습림으로 쓰도록 기증하기도 하였으며, 1912년 2월에는 대정공립보통학교의 학무위원(學務委員)으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이재교는 대정 군수였던 채구석(蔡龜錫)에게 중문 천제연에서 속칭 ‘베리내[성천포]’까지 관개수로를 내도록 권하여 그가 이일을 진행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경성제국대학 설치령이 발표되었을 때는 이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조선민립대학 기성회가 구성되었는데 대정읍 출신의 허안식과 같은 민족주의 학자들과 더불어 제주도지부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1943년 6월 21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재교는 고대의 역사와 한시에 능통하였고 대정향교를 지킨 마지막 보루로 향교에서 훈학할 때 여러 시문집과 기록을 남겼다고 전해지나, 일제 강점기에 많은 서책을 분실하여, 『가승』에 전하는 2~3편의 잡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묘소]
이재교의 묘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 777번지 속칭 진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