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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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辛祜 |
이칭/별칭 | 이헌일,상전헌일(上田憲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웅철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이신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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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이신호 신인회 가입 |
활동 시기/일시 | 1924년 - 이신호 모슬포청년회 창립, 서무 담당 |
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이신호 구좌 해녀 항일 항쟁의 배후로 일경에 검거됨, 치안유지법위반으로 2년 복역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 이신호 3·1절 28주년 기념대회 사건으로 피검, 6개월 복역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10월 19일 - 이신호 사망 |
출생지 | 이신호 출생지 -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1503번지 |
묘소 | 이신호 묘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
성격 | 항일운동가|교육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모슬포 청년회 서무|대정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출신의 사회주의 계열 항일운동가·교육자.
[가계]
이신호(李辛祜)는 1901년 대정읍 하모리 1503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고부(古阜)이고, 아버지는 이치항(李致恒), 어머니는 허계양(許癸陽), 동생은 이병호이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의 종손으로 조부와 부모의 총애를 받으며 자랐다.
[활동 사항]
이신호는 일찍이 중동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였으나, 2학년 재학 시절에 서울에서 벌어진 3.1만세운동에 고무되어 항일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 학교를 중퇴하고 귀향하였다. 귀향한 이신호는 가파도 신유의숙에서 잠시 교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후 오대진·김한정 등과 교류하며 1924년 제주도 최초의 급진 청소년 단체인 신인회에 가입, 항일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24년 3월 21일에는 모슬포청년회를 창립하여 오대진이 총무가 되고 자신은 서무를 담당하면서 제주청년연합회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하였다.
이후 모슬포청년회에서 가파청년회·신도청년회 등이 파생되었고, 모슬포를 중심으로 이도일의 양조장 등에서 수시로 회합하며 항일 사회주의 운동인 야체이카 활동을 주도하는 한편, 오대진 등과 소년단 항일활동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32년 1월 제주 해녀 항일 투쟁의 배후로 지목되어 일경에 검거되었고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2년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광복 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건준] 활동을 하였고, 대정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그는 1947년 제주읍 관덕정 등에서 열린 3·1절 28주년 기념 대회 사건으로 미군정에 피검되어 6개월형을 받고 복역하였다. 이후 남로당이 초대 입법의원으로 추대되었으나 거절하고, 남제주군을 대표하는 민의원으로 되찾은 나라의 정치인으로 출발하겠다고 공표하기도 하였다.
1949년 4·3 사건의 와중에 경찰에 검거되어 1949년 10월 19일 총살당하였다.
[묘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위치한 대정여자고등학교 동쪽 속칭 ‘노른고지[노른곶]’ 송림에 그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