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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2리 고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462
한자 古衙二里古墳
영어의미역 Ancient Tomb in Goa 2-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 산 13-1
시대 고대/삼국 시대/가야
집필자 조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
건립시기/연도 6세기 중반
높이 2.5m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 산 13-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65호
문화재 지정일 1968년 12월 19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고아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

[위치]

고아2리 고분대가야의 주 고분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약 500m 떨어진 남쪽의 고아리 고분군에 소속된 대형 봉토분이다. 고아리 고분군대가야 치소지(治所地)의 고분군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연장선상에 해당한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최남단에 해당하는 야산 정상부로부터 동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완만한 산등성이에 맞춘 입지이며, 남쪽의 비탈면으로 시작하는 지점에는 거의 붙다시피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이 있다. 산등성이 앞쪽에는 남쪽으로 흐르는 대가천과 동쪽으로 흐르는 안림천[조선시대의 소가천]이 Y자형을 이루면서 회천으로 합류하는 지대이다. 앞쪽의 소로는 일제강점기에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관통하는 국도가 개설되기 전에 서부 경상남도를 오가는 주 도로였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64년 고분 서쪽에서 발견된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으로 도굴 위험이 뒤따르면서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발굴 결과 백제의 영향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은 규모가 매우 크지만, 천장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고 두 군데의 패각 무더기만 있었다. 따라서 발굴 보고자는 원래부터 미완성된 고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석실 중앙부에 천장돌로 추정되는 큰 판석 2매가 발견됨으로써 완성된 고분이 도굴로 천장 부분이 무너져 내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된다.

[형태]

묘향(墓向)을 정동으로 둔 횡혈식 석실분[굴식 돌방무덤] 봉토분이다. 현실(玄室)[널방]은 정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의 평면 형태와 활천장[궁륭식 천장]이며, 전벽 중앙에 긴 연도(羨道)[널길]를 내었다. 봉분 속에서 나타난 둘레돌은 직경 17m의 원형이며, 봉분 높이는 현실 바닥 중앙에서 2.5m이다.

현실은 할석으로 벽체를 축조하였는데, 천장부로 내경(內頃)하기 시작하는 부분에는 내경 각도에 맞추어 사변(斜邊)으로 가공한 석재를 사용하였다. 점토로 미장한 바닥 아래에는 일반적인 중(中)자 형태에서 종향(從向) 1열을 더 배치하고 자갈을 채운 배수구를 시설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형태는 현실 규모가 매우 커서 배수가 원활하도록 고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현실 규모는 길이[동서] 4.5m, 너비[남북] 3.5m, 잔존 최대 높이 1.3m이다.

연도는 중앙 연도식이며 너비 1.1m, 길이 4.3m로 상당히 길고 잔존하는 최대 높이는 1.3m이다. 연문부에는 양쪽 문주 위쪽에 대형 판상석을 세웠고, 잔존 벽체의 상단석이 사변형으로 가공된 것이 있어 내경한 정도를 벗어나 터널 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 연문에서 둘레돌까지는 할석으로 배치하여 묘도의 범위만 대충 표현하였으며, 현실에서 연도를 거쳐 시설된 배수구가 묘도 부분에서는 좌측으로 굽었다. 한편 모든 벽체에는 석재 사이에 밀착토를 깔아 움직이지 않게 하였다.

[출토유물]

유물은 연도 바닥에서 조개껍데기 무더기가 발견되었고, 문주 위쪽 판상석의 안팎에서 쇠못 5개가 출토되었다.

[현황]

고아2리 고분은 1968년 12월 19일 사적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추정된 봉분의 원래 높이까지 흙을 쌓은 다음 잔디를 심어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아2리 고분은 석실을 할석으로 축조한 활천장 횡혈식 석실분으로 가야뿐 아니라 백제 지역 가운데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더구나 연도의 천장부도 터널 형태일 가능성이 있어 한반도 남부의 횡혈식 석실분에 관한 자료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또한 석실의 여러 부분에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의 구조 양식이 적용되어 있어 대가야 말기에 백제로부터 전래된 묘제(墓制)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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