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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582
한자 成豊世孝子碑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for Seong Pungs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127[나선로 29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8월 5일연표보기 - 성풍세효자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성풍세효자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비석|효자비
건립시기/일시 1768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성풍세
높이 86㎝
너비 4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127[나선로 292]지도보기
소유자 창녕성씨 문중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 있는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 비석.

[개설]

성풍세(成豊世)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영의정을 지낸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주 노곡(魯谷)으로 피난을 간 성풍세는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의병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어머니의 연세 83세 때 도끼로 얼음을 깨어 잉어를 구해 드렸으며 어머니가 한 겨울에 대추를 원하자 눈 속을 헤매어 대추를 구해 드렸다고 한다. 성풍세의 효행에 하늘도 감명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상막에 드릴 반찬이 없어 걱정하자 산 꿩이 스스로 날아와 죽었다고 한다.

[건립경위]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성풍세의 효행을 칭송하였고 조정에서도 효자로 표창하였다. 마을에서는 1712년(숙종 38)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1768년마을에서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성풍세효자비를 세웠다.

[위치]

다산면 나정리에서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 가죽정마을로 가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나정리와 용암면 사이에 다산석재단지가 있으며 성풍세효자비는 다산석재단지로 가기 약 400m 전 길 우측에 위치한다.

[형태]

성풍세효자비는 귀부 위에 비신을 두고 반원형의 연화문이 조각된 이수를 얹은 형태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86㎝, 너비는 45㎝이다. 비신은 86×44×18㎝, 이수는 56×57×23㎝, 귀부는 77×127×31㎝이다. 비를 보호하기 위해 단칸맞배지붕을 한 비각과 담장을 만들어 놓았다.

[금석문]

비 앞면에 ‘효자 성공휘풍세지비(孝子成公諱豊世之碑)’가 새겨져 있다.

[현황]

성풍세효자비는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나정리에 위치하고 있는 성풍세효자비는 길가에 안내문과 문화재 지정 비석이 있으며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돌담장이 비각을 둘러싸고 있다. 대문 위에는 ‘백원문(百源門)’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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