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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정려비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588
한자 昌寧曺氏旌閭碑
영어의미역 Monument Shrine of Lady Jo from Changr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25-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석|정려비
양식 옥개형
건립시기/일시 1809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조식|정사현|정세권|이우세|정민세
재질 화강석
높이 195㎝
너비 44㎝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25-3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창녕조씨 정려비.

[개설]

임진왜란 때 김면, 곽재우 등과 같이 왜병에 대항하여 공을 세운 정서(鄭序)의 부친 월담(月潭) 정사현(鄭師賢)의 부인인 창녕조씨의 정려 사실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건립경위]

건립과 관련해서는 “숭정기원후사기사삼월일구대종손유학진주정세권립생원경산이우세근찬구대손유학정민세근서(崇禎紀元後四己巳三月日九 代宗孫幼学晋州鄭世権立生員京山李禹世謹撰九代孫幼学鄭民世謹書)”라 하여 1809년(순조 9) 3월 9세손 정세권이 세우고, 이우세가 비문을 짓고, 정민세가 썼음을 알 수 있다.

[위치]

창녕조씨 정려비대가야읍에서 대가야박물관 방향으로 대구~거창 간 국도 26호선을 지나 박물관 입구 골짜기 직전의 우측 골짜기 나지막한 언덕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형태]

비 머리에는 와문(渦紋)과 국화문을 조각하였고, 비신을 보호하기 위해 양쪽에 장방형 돌판을 세우고 맞배형 돌지붕을 얹어 놓았다. 약식 귀부도 있다. 비의 전체 높이 195㎝, 지붕 높이 45㎝, 비신 높이 105㎝, 비신 너비 44㎝, 지대석 높이 21㎝이며, 비신 양옆의 장방형 돌판을 포함한 전체 폭은 135㎝이다. 이 비의 오른편 골짜기 약간 안쪽 20m 정도에 월담 정사현 관련 대형 비석이 세워져 있다.

[금석문]

비 전면에 ‘월담선생정공지배 정렬부인 창녕조씨 정려비(月潭先生鄭公之配貞烈夫人昌寧曺氏旌閭碑)’라 새기고 소자(小字)로 영남 고령현 구미산 아래 정렬부인 창녕조씨의 정려에 대해 소상한 내용을 새겼다. 중간 부분의 창녕조씨 세계(世系)와 범절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부인계출창녕판교휘언형기고야남명선생휘식기형야부인이정덕병인생자유천성지효우습정훈엄유규범급계귀우월담정선생사현개사현사존장봉군자탄진성경을묘월담공하세부인역척비지습렴장제일준례제욕려묘이이부인이어남자솔비래왕신석불철사시제절의매소우묘전……(夫人係出昌寧判校諱彦亨其考也南冥先生諱植其兄也夫人以正徳丙寅生自幼天性至孝又襲庭訓儼有閨範及笄帰于月潭鄭先生思玄改師賢事尊丈奉君子殫尽誠敬乙卯月潭公下世夫人易戚備至襲斂葬祭一遵礼制欲廬墓而以夫人異於男子率婢来往晨夕不輟四時製節衣毎焼于墓前……)”

[현황]

이 비석은 창녕조씨 정려각 유지(遺址)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신을 보호하기 위해 양쪽에 장방형 돌기둥을 세우고 맞배형 돌지붕을 얹어 놓아 약간의 보존 기능은 있으나 보호각이 갖추어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창녕조씨의 친정아버지는 조언형(趙彦亨)으로 그 형님은 영남에서 매우 유명한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다. 그러한 관계로 창녕조씨의 제반 범절은 물론 정려비의 내용이 저간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고 보인다. 이 내용을 통해 당시 여인들의 모범으로 추앙받았던 창녕조씨의 면면을 잘 살펴볼 수 있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 인간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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