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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00
한자 古地圖
영어의미역 Old Maps of Gory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병훈

[정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시대 지도.

[개설]

고지도는 근대적인 투영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주로 행정·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실학(實學)이 일어나면서 산업·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산맥과 하천·항만·도로망 등의 표시가 정밀해졌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지도, 천하지도, 전국지도, 지방지도, 군현 지도, 관방 지도로 분류할 수 있다.

[고령군이 표기된 고지도]

1. 『1872년 지방도』-「경상도 고령현」

읍치는 지금의 대가야읍 헌문리쾌빈리에 있었다. 지도는 북쪽 대신에 서쪽을 위로 해서 그려졌다. 이는 아마도 읍치의 좌향(坐向)을 고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산천은 청색을 사용하여 표현했는데, 산줄기는 연맥을 강조하여 다소 거칠게 그렸고 하천은 굵기를 달리하여 대소를 구분하였다. 특히 미숭산(美崇山)에서 고을의 진산인 이산(耳山)으로 뻗어 내린 맥을 매우 강조하였다. 읍치에는 삼단 일묘(三壇一廟)를 비롯한 여러 관청 건물을 상세히 그렸다. 특히 옥(獄)은 울타리를 그려 격리된 공간임을 표현하였다. 주변 지역에는 각 면과 소속 마을을 비교적 상세히 표시하였다. 당시 설치된 사창도 다른 군현과 마찬가지로 표시되어 있다. 붉은 선으로 그려진 도로변에는 역과 점막도 볼 수 있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읍내에는 읍시(邑市)가 형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읍치 동쪽의 망산봉대(望山烽臺), 상동면의 벽송정(碧松亭), 숭의산 밑의 반룡사(盤龍寺)가 부가적으로 그려져 있다.

2. 『광여도(廣輿圖)』-「경상도 고령현」

고령현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쌍림면, 우곡면, 개진면 서쪽, 성산면, 운수면, 덕곡면 일부에 해당한다. 읍치는 대가야읍 지산리쾌빈리 일대에 있었다. 지도에는 회천이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흐르고 있어서 서쪽이 위쪽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의 서쪽에 있는 고을의 진산인 이산의 좌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에는 매림사(梅林祠), 도암사(道岩祠), 영연사(靈淵祠), 문연사(文淵祠) 등 4개의 ‘사우(祠宇)’가 보이는데, 모두 사액을 받지는 못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이곳들을 모두 향현사(鄕賢祠)로 기록하고 있다. 신라 애장왕 2년인 802년에 만들어진 후 여러 번 불에 타서 사명대사(泗溟大使) 등에 의해 중건되어 지금까지 전하는 반룡사가 읍치 위쪽에 보이고 있다. 그 외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개산진(開山津) 등이 보인다.

3.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영남지도』「고령」

고령현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쌍림면, 우곡면 연리·월오리·도진리 서쪽, 개진면구곡리 서쪽, 성산면사부리, 덕곡면후암리에 해당된다. 읍치는 고령읍 지산리·쾌빈리 일대에 있었다. 고을의 진산은 서쪽 2리에 있었다는 이산이지만,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지도는 서쪽을 위로 향하도록 그렸는데, 읍치의 좌향이 동쪽을 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도에는 매림사·도암사·영연사·문연사 등 4개의 사우가 보인다. 지도 아래쪽의 강창(江倉)은 이 고을의 세미(稅米)와 대동미(大同米)를 운반하기 위해 저장하던 창고이다.

4. 『여지도(輿地圖)』-「경상도 고령현」

읍치 부분이 더 크게 그려져 있고, 적림(赤林)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세로[남북]가 상대적으로 더 길게 그려져 있다. 반면에 하천의 유로와 지명은 거의 동일하게 되어 있다. 하천의 표현에서 오른쪽의 낙동강이 다른 하천과 별로 구분되지 않게 표현되었다. 읍치 아래쪽의 하천은 현재의 안림천으로, 실제로는 합천계(陜川界) 방면에서 흘러온다. 지도에는 합천계를 모두 산줄기로 표현하여 상동면이 안림천의 발원지인 것처럼 표현하였다. 위쪽의 대가천은 현재의 회천이고, 소가천은 그 지류로서 현재도 소가천이라 부르고 있다. 두 하천 모두 성주계(星州界)를 넘어서 들어온다.

지도에서는 대가천 상류 부분을 아예 산줄기로 연결하여 확실하게 사실과 다르게 표현하였다. 읍치의 창(倉)과 쾌빈루(快賓樓)를 제외하면 「경상도 고령현」을 그린 지도에 나오는 지명은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반면에 『해동지도』에 나오는 지명 중 「경상도 고령현」 지도에 수록되지 않은 것이 여러 개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볼 때 『여지도』 중 경상도 고령현을 그린 부분은 『해동지도』를 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필사 과정에서 여러 가지 오류를 범한 것으로 생각된다.

「경상도 고령현」지도에서 노란색 사각형은 보통 면에만 적용시켰다. 그런데 면이 아닌 지명에도 노란색 사각형을 표시하고 있어 필사를 할 때 정보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노란색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의수(宜守)와 의진(宜陣)은 모두 군사적 측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마땅히 지킬 만한 곳’, ‘마땅히 진을 칠 만한 곳’이라는 뜻일 뿐 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5. 『조선지도(朝鮮地圖)』[규 16030]-「경상도 고령」

고령 지역은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개진면, 쌍림면, 운수면 일부, 우곡면 서부 지역 일대에 해당되며, 읍치는 대가야읍 쾌빈리헌문리 일대에 있었다. 지도에 보이는 고령의 하천은 성주에서 흘러나오는 대가천이 읍치가 있는 곳에서 합천에서 들어오는 가야천과 합친 다음 대반천[현재의 회천]이 되고, 계속 흘러서 낙동강에 유입된다. 대가야가 자리했던 고령은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이고, 낙동강이 좁은 골짜기를 통해 이어진 천연의 요새 지역이다.

진산은 미숭산에서 이어지는 나지막한 구이산(九耳山)이다. 지도에는 보이지 않지만 미숭산 아래에는 반룡사가 있는데, 용이 서리고 앉은 것과 같은 지형에 위치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읍치 아래에 보이는 안림역은 성주의 무계역과 안언역, 합천의 금양역, 초계의 팔진역과 연결된다. 읍치 동쪽에 보이는 망산봉은 미숭산, 성주의 이부로산(伊夫老山)에 응한다.

6. 『지승(地乘)』[규15423]-「경상도 고령현」

읍치는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진산은 읍치 왼쪽에 표시된 이산이다. 그 왼쪽의 미숭산대가야읍과 합천군 야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인데, 지금은 관광지로 변했다. 미숭산의 북서쪽에는 해인사로 유명한 가야산 국립공원이 위치한다. 미숭산 오른쪽의 반룡사는 현재 쌍림면 용리에 남아 있다. 지도 오른쪽에는 낙동강이 그려졌으며, 나루와 강창이 그 옆에 보인다. 개산진은 현재의 개진면의 진촌에 있던 나루이다. 객사 앞에 그려진 누정인 쾌빈루는 현재의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던 것이다.

읍치에는 성곽 없이 주요 건물이 표현되어, 이전하여 재건축된 향교가 대가야읍에 있다. 외곽에 있었던 사직단, 여단, 성황단은 지도에 그리지 않았다. 읍치 오른쪽 지대가 낮은 하천가에는 숲이 조성되어 있고 적림(赤林)이라고 표시되었다. 원래 『지승』에서는 도로 이름을 적은 경우가 드문데, 이 지도 오른쪽 위에 대구로(大丘路)라고 따로 적혀 있다. 역원은 따로 표시하지 않았다. 봉수대가 곳곳에 표시되었고, 육로에 중요한 고개의 위치와 이름을 표시하였다.

7. 『해동지도(海東地圖)』-「경상도 고령현」

고령현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인안리 등 3개리를 제외한 개진면 전 지역, 우곡면 서부, 쌍림면, 운수면 운산리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읍치는 지금의 대가야읍 지산동 일대에 있었다. 읍치 서쪽 미숭산에서 산줄기가 동쪽으로 향해 가다가 진산인 이산에서 멈추고 읍치를 감싸 안고 있다. 또한 가야천과 용담천이 읍치 앞에서 합쳐져 합천(合川)[지금의 회천]이 되어 동류하여 낙동강 본류로 들어간다. 피향정(披香亭)은 읍내에 있는 누각이다.

읍치 좌측에 보이는 벽송정(碧松亭)은 신라 박혁거세 1년인 B.C. 5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데, 신라 말에 중수할 때 최치원이 상량문과 시를 지었다 하며, 조선 성종김굉필정여창이 시를 지어 찬송했다고 전한다. 1920년 장마 때 떠내려가는 것을 일부 건져서 현재의 위치[고령군 쌍림면 신촌]에 세웠다고 한다. 미숭산에 있는 반룡사는 용이 서리고 앉은 것 같은 지형에 위치하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읍치 서쪽 낙동강에 위치한 개산진은 고령에서 현풍으로 가는 주요 나루터로서도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고령현에서 거둔 세곡이 개산진 부근의 강창에 수납되어 조운선의 발선지로서도 중요하였다. 또한 고령의 중요한 관문 포구로서 이곳에서 어염과 곡물의 물물 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8. 『영남지도(嶺南地圖)』(10197)-「고령현 지도」

1책 72장으로 되어 있는 『영남지도』 중 64번째에 「고령현 지도」가 있다. 지도의 크기는 세로 25.4㎝, 가로 19.3㎝이다. 18세기 중엽에 작성된 것으로 읍치를 중심으로 인근 고을과의 경계 및 하천, 소속 면과 원사(院祠), 향교 등을 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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