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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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선비 성봉화(成鳳和)가 마을을 개척하고 몇 년 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기슭에 정자를 짓고 글공부를 하였다. 이에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므로 강정(江亭)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형곡동을 병합하여 강정동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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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있던 포구. 개경포(開經浦)는 개진면 개포리 앞 낙동강 변의 포구로 옛날에는 소금을 비롯한 곡식을 실어 나를 정도로 번창하였다. 개경포라는 이름은 현재 해인사에 보관된 ‘강화경판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낙동강을 거쳐 개포나루를 통해 이운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달리 개포나루, 개포진(開浦津), 개산강(開山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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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실마을의 점필재 종택에는 김종직과 그 후손들이 남긴 유품들이 문화재로 전해 온다. 이 유물들은 1985년 10월에 ‘점필재 문적 유품 및 종가 문서’라는 이름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9호로 지정되었다. 유품은 『당후일기(堂后日記)』 등 서책 5책, 벼루 등 유품 14점, 교지 등 고문서 151매 등 총 170여 점에 이른다. 점필재 종손인 김병식 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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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고령 지역 역사. 통일신라시대 고령군은 야로현과 신복현을 영현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후삼국 시기 고령 지역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뚜렷한 호족이 없는 반면 인근의 성주 지역에서는 이총언(李悤言) 등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하여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 주부군현의 명호 개정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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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군. 고령군은 경상북도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경상남도와 접해 있고, 동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시와 맞닿아 있다. 서쪽에 있는 가야산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과 합천군 야로면에서 내려온 안림천의 물길이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만들며 흘러내려 대가야읍에서 합쳐져 회천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고령군은 서쪽의 높은 산과 동쪽의 낙동강으로 보호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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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고려 후기인 1350년(충정왕 2)경 박경(朴景)이 입향한 이후 고령박씨의 본향을 이루었다. 이후 도진리의 고령박씨 문중은 지금까지 650년간 이곳에서 세거해 오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도진리 박씨들은 다른 문파와 구분하여 자신들을 특별히 ‘도진박씨’라고도 부른다.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으로는 도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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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령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관청.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려시대에 고령 지역을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 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에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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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과 고령향교가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효 사상을 전파하고자 주관하는 기로연 재현 행사. 기로연(耆老宴)은 조선시대 기로소(耆老所)에 등록된 나이 많은 문신들을 위해 국가에서 베풀어 주는 잔치이다. 매년 상사(上巳)[음력 3월 상순의 사일, 혹은 3월 3일]와 중양(重陽)[9월 9일]에 보제루(普濟樓)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기로연에는 정2품의 실직(實職)을 지낸 7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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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일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성씨. 성산이씨(星山李氏)는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한다. 이능일은 신라 말 성산[성주의 옛 이름] 일대를 통치해 온 호족으로 후삼국 정립 시기에 고려의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원래 이름은 이능(李能) 또는 이능필(李能弼)이었는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한 점을 치하하는 뜻에서 통일을 의미하는 ‘일(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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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하고 이석견(李碩堅)과 이조년(李兆年)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 성주(星州)는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로, 성주이씨 시조 이순유는 신라 경순왕 때의 재상이었다. 신라가 망하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에 이주하여 숨어 살았다. 이에 태조 왕건이 그 절의에 감복하여 호장(戶長)으로 삼았다. 고려 원종 때의 인물인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이 중흥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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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 제도는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한자 문화의 유입 이후인 삼국시대에 나타난다. 고대 국가에서는 주로 왕족이나 극히 일부의 중앙 귀족에게서만 보인다. 성씨 제도가 본격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이다. 나말여초의 격심한 사회 변동에 따른 신분제의 재편성 과정에서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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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중엽 마을을 개척할 당시 한 정승이 어명을 받고 이곳에 있는 제석산[387m]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어실 또는 어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성주군 소야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어곡동이라 하고 성산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성산면 어곡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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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고령군의 역사. 고령이라는 지명은 통일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에 대가야군(大加耶郡)을 고령군(高靈郡)으로 개칭할 때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고령현(高靈縣)에 현감이 내려와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를 개정하면서 경상도 고령현을 고령군으로 개칭하였다. 1896년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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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지명.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령 지역을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다른 자료에는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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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시조는 전호익(全虎翼)이며, 7대조 전이갑(全以甲)은 고려 태조를 도와 태사(太師)가 되었다. 파조이자 5대조 성산백(星山伯) 전순(全順)은 공양왕 대 헌납(獻納)의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향리에 은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감찰 전현노(全玄老)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참의 전전중(全殿中)이다. 할아버지는 학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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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고령군에서 개최되는 각종 의례와 행사. 축제는 개인 또는 공동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결속력을 주는 사건이나 시기를 기념하여 의식을 행하는 행위이다.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개최되는 축제로는 대가야문화예술제, 고령대가야체험축제, 우륵추모제, 기로연재현행사가 있으며 고령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주민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다. 고령문화원 주관으로 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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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홍도(弘道), 호는 몽계(夢溪). 할아버지는 보문각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지낸 한련(韓璉)이고, 아버지는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한희적(韓希迪)이다. 부인은 이씨(李氏), 대언(代言) 권확(權確)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위위(衛尉) 장지순(張之順)의 딸 영가장씨(永嘉張氏)가 있었다. 아들로는 군수(郡守) 한진(韓珍),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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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강화경판 고려대장경(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일명 강화경판]은 13세기 중반 몽고의 침략으로 야기된 민족적 수난기에 피난 수도였던 강화경(江華京)에 설치된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조성되어, 1236년(고종 23)부터 1251년(고종 38)까지 16년간에 걸친 공역으로 이루어졌다. 강화경판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운된 시기에 대해서는 고려 말기 설[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