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 있는 창녕성씨 동성마을. 입향조인 선비 성봉화가 마을 뒷산 기슭 낙동강 변에 정자를 지어 학문을 닦았는데, 강변에 정자가 있는 마을이므로 강정이라 하였다. 조선 중엽 성봉화가 마을에 정착한 뒤로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성풍세(成豊世)[1572~1649]의 고향이기도 하다. 강정리는 조선 말기 성주군 가현면에...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전라도에 사는 기씨(奇氏)가 이곳에 정자나무를 심었으므로 전라도의 ‘나(羅)’자를 따서 나정(羅亭)이라 하였다. 마을 앞 정자에서 뒷산을 바라보면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나정 건너 남쪽에 있는 새나정은 약 70년 전에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다. 달리 신나정(新羅亭)이라고도 하고,...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고려 시중(侍中)을 지낸 성송국(成松國)의 13세손이다. 성풍세(成豊世)[1572~1650]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홀로 된 어머니를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로 피난시키고 난 뒤 자신은 상주진(尙州鎭)의 병사로 입대하였다. 훈련을 마치면 상주진에서 나정리까지 180리 길을 저녁에 갔다가 아침이면 돌아오기를 계속하였다. 상주진의 병마절도...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성풍세가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석굴. 성풍세(成豊世)는 본관이 창녕이며,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냈던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성주 노곡으로 피난 와서 의병에 가담하여 낮에는 나라를 지키는 데 힘쓰고 밤에는 효를 다하는 충과 효를 겸비한 효자라고 전한다.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64년(영조 40) 성만철이 「성효자효행지(成孝子孝行誌)」...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 있는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 비석. 성풍세(成豊世)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영의정을 지낸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주 노곡(魯谷)으로 피난을 간 성풍세는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의병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어머니의 연세 83세 때 도끼로 얼음을 깨어...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섬긴 자녀. 효 사상은 삼국시대에 이미 전개되었다. 고구려에서는 태학(太學)에서 오경(五經)과 중국의 사서들을 교육하였고, 신라도 국학(國學)에서 『논어(論語)』와 『효경(孝經)』 등을 교육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을 설치하여 유교 경전을 학습하고, 『논어』와 『효경』을 필수 과목으로 하여 유교적 충효 사상을 중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