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1908년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 의연금 모집 기관. 국채 보상 운동은 전 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 1,300만 원을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국권 회복 운동으로 1907년 2월에 대구에서 공식화되었다. 1907년 1월 부산상무소[회두: 서상돈]에서 처음 논의되어 1907년 1월 29일 대구관문사 사장 김광제, 부사장 서상돈, 대동광문회...
개항기 고령 출신의 계몽운동가. 이두훈(李斗勳)[1856~1918]은 고려 왕조 이후 고령에서 세거한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의 후예로, 초명은 중훈(中勳)이고 자는 대형(大衡)이며 호는 홍와(弘窩)이다. 한평생 학문과 예법을 숭상하며 제자 양성에 힘썼다. 이두훈의 집안은 세종 대의 이사징을 비롯하여 이동례(李東禮), 이현룡(李見龍), 이문룡 등의 학자를 배출하였다. 특히 9대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