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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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곽대연(郭大淵)[1881~1927]은 본관이 현풍(玄風)으로, 본명은 곽윤(郭奫)이며 호는 겸와(謙窩)이다. 대연은 자(字)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다곡면 다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곽정석(郭廷錫)이며, 대한제국 말의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조카이다. 곽대연은 8세 때부터 숙부인 곽종석에게 글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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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덕(金尙德)[1891~1950]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저전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영주(令州)이다.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상덕은 1912년 고령공립보통학교와 1915년 경신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거쳐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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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형우(南亨祐)[1875~1943]는 본관이 의령(宜寧)으로, 호는 유석(瘐石)이다.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태어났다. 남형우는 1908년 문인인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권유로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입학한 뒤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 평의원과 1909년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1년부터 1917년까지 보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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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상직(文相直)[1893~]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서 태어났다. 문상직은 스무 살 즈음, 서울에서 약 1년간 학문에 전념하다가 곧 만주로 건너가서 통화현(通化縣)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그 후에는 중국 난징[南京]과 만주 안동(安東)에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만주 안동에서 고령 출신인 박광(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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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광(朴洸)[1882~?]은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에서 박지환(朴志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광은 1909년 안희제(安熙濟), 윤세복(尹世復), 김동삼(金東三), 신팔균(申八均) 등 80여 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 결사 조직인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을 꾸려 항일 활동을 펼쳤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문상직(文相直)·이남기(李南基) 등과 함께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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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말~4월 초 고령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3·1운동은 서울에서부터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하여 전국에서 발생하였고, 한국인이 거주하는 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발생하였다. 대도시에서 농촌에 이르기까지 청년·학생과 지식인, 농민과 노동자, 여성 등 전 민족적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3·1운동의 역량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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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길우(申吉雨)[1924~2003]는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일제에 강제 징집되었으나 탈출하여 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신길우는 1943년 10월 일제에게 강제로 징집되어 중국 남경지구 주둔 일본군 부대에 배속되어 있으면서 중국 충칭[重慶]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1944년 4월 탈출에 성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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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흔(李俒)[1887~1948]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자는 성순(性純)이고, 호는 수산(壽山)이다. 중국에서 공명개(孔明凱)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지금의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서 대한제국 말 민족 계몽 운동을 펼친 홍와(弘窩) 이두훈(李斗勳)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완은 어려서부터 행실이 뛰어나게 훌륭하고 단정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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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학로(李鶴魯)[1870~?]는 지금의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서 태어났다. 이학로는 평범한 농부였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 공채 모집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고, 미국의 의원단 일행이 조선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온다는 것과 워싱턴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이현수(李賢壽)·최영돈(崔永敦) 등과 더불어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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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고령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영돈(崔永敦)[1897~1985]은 본관이 화순(和順)으로, 1897년 1월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 안림리에서 태어났다. 최영돈은 향리에서 수학한 후 대구에 있는 계성학교(啓聖學校)를 졸업하였다. 3·1운동 당시 23세 나이로 경상북도 김천 소재 진명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도 자신의 지방에만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