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130
한자 盤城里
영어음역 Bans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규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4㎢
총인구(남, 여) 169명(남자 82명, 여자 87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95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반암서원(盤岩書院)의 ‘반’자와 대성전(大成殿)의 ‘성’자를 따서 반성리(盤城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기 성주군 인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선동·대형동·만하동을 병합하여 반성동이라 하고 덕곡면에 편입하였다. 1988년 5월 1일 덕곡면 반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북쪽과 남쪽에 형성된 해발 고도 300m 안팎의 구릉지 사이로 소가천(小加川)이 흐르고, 그 하류 양쪽 기슭에 반성리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에는 소가천이 형성한 넓은 범람원이 펼쳐져 있고, 배후 산지에 있는 원전지는 농업용수로 이용하고 있다.

[현황]

2010년 4월 기준 면적은 4㎢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95세대에 169명(남자 82명, 여자 8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반성1리·반성2리로 이루어졌으며, 원앞·마늘·양산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원앞원전(院前)이라고도 한다. 1832년(순조 32) 정절공(靖節公) 정구(鄭矩)와 아들인 동평군 정선경, 손자 양평공(襄平公) 정종(鄭種), 참판공(參判公) 정비(鄭秠)를 배향하는 반암서원을 세웠는데, 서원 앞의 마을이라 하여 원앞 또는 원전이라 하였다. 반암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는데, 이후 반암서당으로 현판하였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94년에 확대 개축하였다.

양산은 동주최씨와 광산김씨 두 사람이 마을을 개척할 때 산기슭의 무성한 다래 덩굴을 걷어치우고 나니 물도 좋고 산도 좋아 붙인 이름이다. 마늘은 달리 만하(晩霞)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동래정씨 정운계[본명 홍석]가 마을을 개척하고부터 만하라 하였다. 정운계는 서당을 지어 후학 양성에 노력하였고,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널리 추앙을 받았다. 1704년(숙종 30) 제자들이 그 공을 기리어 형산사(荊山祠)를 세우고 영정을 모셨다. 마늘이 많이 생산되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소가천이 형성한 넓은 범람원에서 벼·딸기·참외를 주로 재배하며, 구릉지와 구릉지 말단부에는 밭이 분포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반성리 유물산포지, 이로재, 성산이씨 효열비각, 옥산재, 유호재, 기우자 정비 선생 신도비, 운계 정선생 유허비 등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3.03 현황 내용 일부 수정 [수정 전]반암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헐렸고 지금은 신도비가 서있다. [수정 후]반암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는데, 이후 반암서당으로 현판하였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94년에 확대 개축하였다.
2017.02.09 내용 수정 [수정 전]정절공(靖節公) 정구(鄭矩)와 아들인 동평군 정선경, 손자 양평공(襄平公) 정종(鄭種)을 배향하는 [수정 후]정절공(靖節公) 정구(鄭矩)와 아들인 동평군 정선경, 손자 양평공(襄平公) 정종(鄭種) 참판공(參判公)정비(鄭秠)를 배향하는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