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박석진나루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274
한자 礡石津-址
영어음역 Baksaejinnaruteo
영어의미역 Baksaejin Ferry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황상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나루터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부리에 있던 조선시대 나루터.

[개설]

박석진나루터가 위치한 고령군 개진면 부리(釜里)는 본래 현풍군 진촌면 지역으로서 옹기 가마가 있었으므로 ‘가암’ 또는 ‘부동’이라 하였다. 마을이 산에 둘러싸인 가마솥 모양이어서 마을 안에 샘을 파면 가마솥에 구멍이 나서 복이 나간다고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1906년(고종 43) 고령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동(倉洞)을 병합하여 부동이라 해서 개진면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 5월 1일 ‘동(洞)’이 ‘리(里)’로 바뀌면서 부리가 되었다.

고령군 개진면 부리 일대에는 과거 낙동강 수운을 이용한 흔적이 지명으로 남아 있는데, 인근 나루머리, 진촌(津村), 진두(津頭)는 낙동강 진늪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고령군 개진면과 달성군을 드나드는 나루촌이므로 나루머리, 나루촌, 진두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이름을 따서 현풍군 진촌면이라 하였다. 또한 창동은 임진왜란 때 곽씨들이 개척한 마을인데, 낙동강을 이용한 하천 교통이 활발하였으며 조선시대 때 이곳에 사창을 두었으므로 창동이라고 하였다.

나루는 교통로와 연결되어 발달하며, 교통에 이용되는 노선은 육로, 수로, 공로의 단계를 밟게 된다. 큰 강이 흐르고 해협이 가로놓여 육로를 차단하는 상황에서는 육로를 연결하는 결절점이 필요한데 이것이 나루이다. 고령군 관내에는 서쪽의 낙동강 강변을 따라 22개의 나루터가 유존하고 있다.

[변천]

박석진나루터낙동강 수운을 이용하여 인근 대구, 창녕 등지로 쌀, 보리 등의 곡물과 소금, 어물 등의 산물을 운반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육상 교통수단의 발달 이전에는 경상도 지역을 흐르는 낙동강을 수로로 많이 이용하였는데, 선운의 경우 육로에 비해 수송비가 훨씬 싸게 먹힐 뿐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양을 수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석진나루터는 1905년(고종 42)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인하여 육상 교통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중부내륙고속국도의 개통으로 고령군 개진면 일대와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연결하는 박석진교가 건설되었으며, 이로 인해 박석진나루터를 이용한 산물과 주민들의 이동은 중단되었다. 고령군 개진면 부리의 대표적인 나루인 박석진수문진은 이제 명칭만을 다리에게 넘겨준 채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현황]

2010년 현재 박석진나루터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으며, 그 명칭만이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