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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군 지세불납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400
한자 高靈郡地稅不納同盟
영어의미역 Goryeong-gun Anti-Land Tax Leagu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민운동|지세불납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31년 12월 5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운수면
관련인물/단체 이상오|성대유

[정의]

1931년 12월 고령 지역의 소작인들이 부당한 지세 납부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역사적 배경]

1910년대 일제에 의해 추진된 토지 조사 사업은 식민지 지주제를 구축하였다. 1920년대 일제는 산미 증식 계획을 시행하면서 식민지 지주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식민지 농업 정책의 결과 지주의 토지는 증가하였으나, 자작농의 대거 몰락하여 자소작농 또는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게다가 1920년대 후반 1930년 초반 세계 대공황은 농촌 경제를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1930년대 초반 고령 지역도 전국적인 현상과 마찬가지로 작황이 심각하게 흉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작료는 작황을 반영하지 않은 채 오히려 증가하였고, 지주가 부담해야 할 지세마저 지주를 대신해 소작농민이 부담해야 하였다. 이에 1931년 11월 고령군의 『동아일보』 지국 기자가 지주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을 기고할 정도였다.

[목적]

고령군 지세불납동맹은 1931년 수확기에 고령면[지금의 대가야읍] 소작인들이 흉년으로 수확물이 크게 줄어 경제생활에 큰 타격을 입게 되자 법적으로 부당한 지세를 지주와 반으로 나누거나 지주가 부담할 것을 요구하며 지세불납동맹(地稅不納同盟)을 결성하였다.

[경과]

고령군 고령면 소작인은 1931년 12월 5일 지세불납동맹을 조직하고 다음과 같은 결의 사항을 채택하였다. 첫째 소직인은 법규상 당연히 지세를 부담할 의무가 없으므로 절대 이를 거부함, 둘째 만일 이 약속을 위반하는 자와는 절교함, 셋째 지주 혹은 마름 중에 무리하게 지세를 요구하는 자가 있을 때는 반드시 이를 소작인 대표자 회의에 보고할 것 등이다. 그리고 1931년 12월 12일 지세 절반 부담을 현실화하기 위해 대가야읍 각 마을 단위로 지세불납동맹을 결성하여 지주에 대항하였다.

이 같은 소작인의 지세불납동맹에 지주들은 이전의 관행대로 지세를 소작인에게 전가한 반면, 이른바 선지주(善地主)로 불린 대구의 이상오와 창녕의 성대유는 소작료를 인하함과 동시에 지세를 자신들이 전부 부담하기로 하였다. 고령군 지제불납동맹은 고령면뿐 아니라 운수면에서도 결성되었다. 운수면에서 1931년 12월 10일 면내 각 마을 마름과 소작인 대표들이 마름 소작인 대표 합동 대회를 열고 그동안 부당하게 소작인이 부담한 지세는 당연히 지주가 부담해야 한다는 의견에 뜻을 같이하였다. 또 지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주에 맞서 농사를 짓지 않는 불경동맹(不耕同盟)을 결성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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