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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602
한자 碧松亭
영어음역 Byeoksongjeong
영어의미역 Byeoksongjeong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 산 84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자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
건립시기/일시 통일신라시대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 산 84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문화재 지정일 1985년 8월 5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리에 있는 정자.

[개설]

벽송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정자 안에 통일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건립 연대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벽송정은 당시 지방의 유학자들로 구성된 유림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각지의 선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하며 토론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위치]

고령에서 합천으로 가는 국도 26호선을 따라가다 경상북도 고령과 경상남도 합천의 경계 지점으로 가기 약 2㎞ 전, 도로 오른쪽에 위치한다. 백산초등학교 뒤편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로는 안림천이 내려다보여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정확히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학자였던 최치원이 시문을 남겼다. 조선시대에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던 제자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의 시문도 정자의 현판에 남아 있다. 1920년 대홍수가 나면서 기존의 6칸 건물이었던 벽송정의 일부가 파손되어 1칸만 남게 되자 선산김씨 문충공파 김병식의 조부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고령군에서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담장과 기단 등이 복원되었다.

[형태]

국도변 경사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벽송정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외곽은 방형의 와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면과 왼쪽 측면에 일각문이 있다. 정면의 일각문 앞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임을 알리는 비석과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일각문을 들어서서 경사진 면에 다시 돌계단이 놓여 있으며 벽송정의 현판이 보인다. 벽송정 규모는 소로수장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골기와 팔작지붕의 홑처마집이다.

[현황]

벽송정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에도 김종직의 17세손인 김병식을 중심으로 매년 음력 4월 초 열흘날 벽송정 유계(儒契)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원들은 150명 정도 되며 과거에는 모임을 통해 한시를 짓기도 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임을 가질 때마다 벽송정 관리 및 유지 보수에 대한 논의를 하며 벽송정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벽송정 유계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김병식이 소유하고 있는 『벽송정 계안』[총 10권, 500년가량 되었다고 함]에 의하면 계(契)의 기원도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 계를 만들 당시 선산김씨, 양천최씨, 고령박씨 등 총 28명이 모여 만들었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 -고령군(계명대학교 박물관, 1998)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인터뷰(김종직의 17대 종손 김병식, 남, 2009.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