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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633
한자 萬南齋
영어음역 Mannamjae
영어의미역 Mannamjae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 241[만남재길 2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동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재실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
건립시기/일시 1670년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 241[만남재길 26]지도보기
소유자 박광동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문화재 지정일 1974년 12월 10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개설]

만남재고령박씨의 중시조인 청하공(淸河公) 박지(朴持)의 묘를 수호하고, 종중회의를 열기 위해 마련한 재실이다. 박지의 묘는 만남재의 뒤편 왼쪽 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박지의 비문은 1728년 그의 11세손이자 조선 후기 문신이며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1691~1756]가 지었고, 그의 10세손인 비안현감 박서한(朴舒漢)이 글씨를 썼다.

이 묘비에 따르면 “고령 남면의 만대산(萬代山)에 있는 술좌(戌座)에 장례를 지냈으며, 공인(恭人)도 같은 자리에 봉분을 달리하여 부좌(祔左)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박문수 자신도 조상의 음덕으로 경상도 안찰사가 되어 조상의 분묘를 중수함에 비문을 새로 쓰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위치]

고령에서 합천군 덕곡면으로 넘어가는 유천령 고개길로 접어들면, 길 오른편으로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 새미실마을이 있다. 만남재는 새미실마을 뒤편에 자리 잡고 있다. 즉, 만대산 아래에 대문채와 재사가 일곽을 이루면서 남동쪽을 향하고 있다. 만남재라는 이름은 만대산의 남쪽에 위치한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변천]

문화재 안내판에는 만남재가 1670년에 건립되고 1974년에 솟을삼문을 신축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1670년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부의 현액인 묘각영건유사록(墓閣營建有司錄)에는 “동치(同治) 원년[1862년] 임술 4월 19일 오시 입주”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현판인 봉서루상량문(鳳棲樓上樑文)에는 “숭정 기원 후 사갑술 중추(崇禎紀元後四甲戌中秋)”라고 하여 1874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료로 보아 만남재는 현재의 재실 건물 외에 누각이나 삼문 등이 건립되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1670년 건립 이후 재사건물 이외에 누각이나 삼문 등이 있었고, 또 여러 차례 중수나 중건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

만남재는 재실과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으로 1974년 신축한 것이라고 한다. 재실은 나지막한 막돌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2칸을 구성한 홑처마 팔작집이다. 평면 구성은 어칸 대청의 좌우에 1칸씩 온돌방을 들인 중당협실형으로 전면에 반 칸 크기의 툇마루를 두고, 양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전면에 툇마루를 설치하기 위해 양쪽 온돌방의 앞쪽 각 모서리에 샛기둥을 세웠다. 대청의 바닥은 우물마루,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구성하였으며, 대청 전면을 개방하고 배면의 각 칸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대청과 온돌방 사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구조는 5량가의 소로주장집이다. 전면의 평주는 모두 원주이나 나머지는 방주를 사용하였다. 상부 가구는 중앙부의 기둥 위에만 통재를 대량으로 걸고, 나머지 부분은 기둥머리에서 합보 되는 맞배 형식을 취하였다. 대청의 대량 위에는 동자대공을 세워 종량을 얹었고, 그 위에 원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어칸의 대청 뒷벽 위에는 ‘만남재(萬南齋)’, ‘영모암(永慕庵)’, ‘봉서루상량문(鳳棲樓上樑文)’, ‘묘각영건유사록(墓閣營建有司錄)’ 등의 현판과 편액들이 걸려 있다. 묘각영건유사록에는 경문장(京門長)으로 목사 박현규(朴顯圭) 등의 방명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