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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05
한자 吳澐宗家文籍
영어의미역 Old Books of O Un's Head Family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104[송림2길 60]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제작시기/일시 1538~1840년연표보기
재질 장지
소장처 고창오씨 죽유공파 종중
소장처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104[송림2길 60]
소유자 고창오씨 죽유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203호
문화재 지정일 1994년 7월 29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적.

[개설]

오운 종가 문적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의병장이었던 죽유(竹牖) 오운(吳澐)[1540~1617]의 종손가에 보관되어 있던 고문서와 전적들이다. 죽유 오운은 1540년에 출생하였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에 등용되어 학유, 직강 등을 지내고 충주목사, 성균관 사성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의 수병장으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령군, 현풍면, 합천군 부근에서 공을 세웠다. 그 후 권율오운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천거함으로써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오운의 저서로는 개인 문집인 『죽유문집(竹牖文集)』과 조선 중기 남인의 역사 인식이 반영된 『동사찬요(東史纂要)』가 있다.

고창오씨 죽유공파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는 총 7종 110점으로 1561년(명종 16)에서 1755년(영조 30) 사이의 재산과 노비의 분배 기록인 분재기 18매와 입안문서 1매, 호적단자 21점, 오운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교지 85점, 오운이 죽은 뒤 광해군이 그의 죽음을 기리며 내린 제문 1점 등이 있다. 전적류로는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全)』 1책[목판본]과 『동문선(東文選)』 5책[훈련도감자본], 『노주연송덕시(勞酒宴頌德詩會)』 1책[갑인자본], 『한구소시(韓歐蘇詩)』 2책[필사본], 『매촌동약(梅村洞約)』 1책[필사본] 등 총 7종 12책이다. 오운 종가 문적은 1994년 7월 29일에 보물 제1203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고문서 중 분재기는 총 18매로 내용에 따라 그 길이도 상당히 길어지는데, 40㎝의 별급문기에서 7m가 넘는 화회문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호적단자는 형태상 1장으로 된 단독 문서가 13점, 2장이 연결된 점련 문서가 1점, 3장 연결의 점연 문서가 5점, 4장 연결의 점연 문서가 1점, 5장 연결의 점연 문서가 1점으로 모두 21점이 남아 전한다.

전적류는 총 7종 12책으로 『대학장구대전』은 내사본(內賜本)으로 목판본이지만 표지에 있는 내사기(內賜記)로 간년을 확인할 수 있다. 『동문선』은 목록 상(上)·중(中), 권33~35, 권67~69, 권100~102 등 5책이 있으며 목록상에 표지 이면지에 내사기가 있고, 첫 번째 장 상단에 ‘선사지기(宣賜之記)’라는 내사인(內賜印)이 찍혀 있다. 『한구소시』는 원래 1책에 엮어져 있었으나 1705년(선조 38) 죽유 오운이 배접(褙接)을 하면서 건곤(乾坤) 2책으로 나누었는데, 건책은 『창려시(昌黎詩)』, 곤책(坤冊)은 『구소시(歐蘇詩)』로 나누어 책제(冊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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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내용]

분재기는 1561(명종 16) 2월에 오수정(吳守貞)이 아들 오운(吳澐)에게 발급한 별급문기(別給文記), 오운의 화회문기(和會文記)를 비롯하여 남매화회문기(男妹和會文記), 외손화회문기(外孫和會文記) 등 다양한 형태의 분재기를 포함하고 있다. 입안문서는 오운의 집안에서 1583년 노비 매매 문제와 관련하여 올린 소지(所志)에 대하여 함안군수가 1585년(선조 18) 5월 20일에 발급한 것이다.

호구단자(戶口單子)는 호구장적(戶口帳籍)을 3년마다 개수하기 위하여 각 호에서 호구 상황을 적어 3년에 한 차례 제출한 문서이다. 오운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호구단자는 1669년(현종 10)~1840년(헌종 6)의 약 170년간에 걸친 문서이다. 제문(祭文)은 1617년 4월 29일 오운이 죽자 광해군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내린 치제문(致祭文)이다.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全)』은 송나라의 주희(朱熹)[1130~1200]가 유학의 체계를 세우면서 『예기(禮記)』에서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의 두 편을 독립시켰는데 총 49편의 『예기』 중 제42편의 『대학』에 장구(章句)를 짓고 해설을 붙여 만든 것이다. 오운 종손가에서 『대학장구대전』를 소장할 수 있었던 것은 1603년(선조 36)에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은 때문이었다. 표지 이면에 내사기(內賜記)가 있고 후표지(後表紙) 이면(裏面)에 ‘구가우인기지불환근득추래(久假于人幾至不還僅得推來)’라 하여 오래도록 남에게 빌려주어 거의 돌려받지 못할 뻔하다가 겨우 찾아왔다는 지기(識記)가 있다.

『동문선』은 성종(成宗) 연간 서거정(徐居正), 노사신(盧思愼), 강희맹(姜希孟), 양성지(梁誠之) 등 23인의 찬집관이 참여하여 편찬한 것으로 활자본 130권 45책의 시문선집이다. 오운 종손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동문선』 5책[훈련도감자본]은 1618년(광해군 10) 11월 당시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이던 오익환(吳益煥)에게 내려진 내사본이다.

『노주연송덕시회편(勞酒宴頌德詩會編)』은 1620년(광해군 12) 3월 신하들이 왕의 덕을 칭송하여 지은 송덕시를 모아 편집한 것이다. 여기에 죽유(竹牖)의 장자(長子) 오여은(吳汝檼)이 지은 송축시(頌祝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책은 그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책의 서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었던 이이첨(李爾瞻)이 적었으며 간행은 판중추부사 박홍구(朴弘耉)[1552~1624]가 맡아서 하였다. 이 책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국내 유일본(唯一本)이다.

『한구소시』는 1538년(중종 33) 6월 오언의(吳彦毅)가 당의 한유(韓愈), 송의 구양수(歐陽修), 소식(蘇軾) 등의 시를 쓴 것으로 상하 격지(隔紙)에 쓰인 율시와 절구시는 오운의 숙부인 오수영(吳守盈)이 쓴 글이다. 책의 권말에는 1605년(선조 38) 8월에 쓴 죽유 오운이 작성한 후지(後識)가 기록되어 책의 편성과 전래 과정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매촌동약(梅村洞約)』고창오씨 죽유공파가 세거하고 있던 매촌동(梅村洞)의 동약으로 1822년(순조 22)에 죽유 오운의 8세손이 결성하여 편찬한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는 당시 고령현감 한광선(韓光善)이 1822년에 쓴 「동약소서(洞約小序)」가 있고, 다음에 1805년(순조 5)에 쓴 오경정(吳慶鼎)의 「동약서(洞約序)」가 있으며 이어서 「동약절목(洞約節目)」 29조가 열록(列錄)되어 있다. 권말에는 ‘도광이년유화절하한(道光二年流火節下澣)’이란 작성 연월일과 관(官)의 수결(手決)이 기록되어 있다. 도광이년은 1822년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국가기록유산(http://memorykore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