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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711
한자 松庵遺稿
영어음역 Songamyugo
영어의미역 Literary Works of Gim M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김면
저자 김면
간행연도/일시 1884년연표보기
권수 3권
책수 1책
사용활자 목활자(木活字)
표제 松庵遺稿

[정의]

1884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무신 김면(金沔)의 문집.

[편찬/발간 경위]

『송암유고(松庵遺稿)』송암(松庵) 김면[1541~1593]의 후손들이 『송암실기(松庵實記)』를 간행한 후 김면의 의병 활동 관련 내용과 그의 시문집을 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다. 발간될 당시 『송암실기』에 실려 있던 「창의사적(倡義事蹟)」과 가장(家將)·시장(諡狀) 부분이 상당 부분 축소되어 들어갔으며, 「임진창의시동고록(壬辰倡義時同苦錄)」 등이 보완되었다.

그런데 가장과 시장 부분이 축소된 데는 김면의 학통 문제와 관련이 깊다. 대북정권이 몰락한 이후 많은 조식(曺植)의 제자들이 퇴계(退溪) 이황(李滉)과의 학문적 관계를 통해 남인으로 편입되었는데, 기존의 조식과의 사승(師承) 관계만을 강조한 『송암실기』의 가장 및 시장은 19세기 후반 유고가 발간될 당시 발간 주체였던 도암서원[김면을 봉향하고 있는 서원]의 원유들에게 하나의 문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원유들은 조식이황의 사문을 왕래했던 한강(寒岡) 정구(鄭逑)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김해부사로 있으면서 한강을 연원으로 하는 근기 남인의 대표 인물인 성재(性齋) 허전(許傳)에게 시장을 부탁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허전의 시장에는 조식이황을 동시에 언급하면서도 이황과의 관계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송암실기』의 서문은 1785년, 발문은 1786년에 쓰였다. 그런데 『송암유고』의 서문이 1774년, 발문이 1785년에 쓰인 것으로 보아 비슷한 시기에 두 문집이 편찬된 것으로 보이지만, 『송암유고』에는 1807년에 쓴 「공충도각읍유생통문(公忠道各邑儒生通文)」이 수록되어 있어 서문의 연대와는 다르게 그 이후에 발간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송암유고』 본문 중 “갑신년(甲申年) 겨울에 성재 허판서(許判書) 전(傳)에게 시장을 부탁했다.”는 기록에서 1884년에 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허전은 1864년 김해부사를 거쳐 1881년에 판서 직에 올랐기 때문에 갑신년이라고 하는 것은 1884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형태]

3권 1책의 목활자(木活字)본이다. 표제는 ‘송암유고(松庵遺稿)’이다.

[구성/내용]

권1은 시(詩)·서(書)·문(文)으로 이루어져 있고, 권2는 「창의사적」, 권3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송암유고』『송암실기』 간행 이후 새롭게 나온 자료와 후손들의 행적 및 사업의 결과를 추가로 반영하고 있으나 가장과 시장이 상당 부분 삭제되거나 축소되었으며, 「임진창의시동고록」 등이 보완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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