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박계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804
한자 朴繼祖
영어음역 Park Gyejo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경상북도 고령군
성별
생년 1465년연표보기
몰년 1525년연표보기
본관 고령
대표관직 양산군수

[정의]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증조할아버지는 참의(參議) 박계손(朴季孫)이고, 할아버지는 울산군수를 역임한 박승로(朴承老)이며, 아버지는 세조의 공신 박형(朴炯)이다. ‘계조(繼祖)’란 이름은 아버지가 나라를 위하여 직무를 다하였다고 하여 세조가 이름을 내려준 것이다. 고령박씨가 입향한 것은 고려 말로 추정된다. 박계조(朴繼祖)의 윗 대 조상들은 고려조 이래 본관의 향직을 세습하다가 고려 후기에 군직과 동정직을 역임하면서 품관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15세기 초에 박형세조의 공신이 되어 실직 사족이 된 뒤부터 고령 지방을 대표하는 재지 사족으로 자리잡았다.

처음 이름이 드러난 이는 박계조의 할아버지인 박승로이다. 그리고 박형은 아버지의 무반직을 계승하여 상호군에 재직하면서 세조의 정란원종공신 1등으로 녹훈되었다. 이후 경상우도 병마절제사, 함길도 병마절제사, 훈련원지사를 역임하였다. 이로써 박승로는 정헌대부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1457년(세조 3)에는 적몰된 정종(鄭悰)의 금천 소재 전택을 하사받았고, 1460년(세조 6)에는 북정군공(北征軍功)에 녹훈되어 노비 6구를 받는 등 관직의 승진과 함께 국가로부터 전민(田民)을 하사받음으로써 사족의 지위를 굳혔다.

[활동사항]

박계조[1465~1525]는 진주판관, 경산현령을 할 당시 삼포왜란을 토벌한 공을 세워 양산군수로 승차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